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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자본주의
플랫폼자본주의
  • 조재근
  • 승인 2020.06.0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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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자본주의닉 서르닉 지음 | 심성보 옮김 | 킹콩북
플랫폼 자본주의

 

닉 서르닉 지음 | 심성보 옮김 | 킹콩북

이 책은 플랫폼 경제를 자본주의 법칙 안에서 다루고 탈자본주의라는 미래 전망으로 마무리 짓는다. 저자는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터, 공유경제 등 최신 기술과 그 사회적 변화를 세 가지 차원에서 다룬다.

첫 번째는 플랫폼 산업의 과거이다. 저자는 디지털 경제의 최신 사업모델인 플랫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변형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분석한다. 1970년대 자본주의가 장기침체에 빠지고 금융화된 신자유주의가 출현하자, 자본주의는 제조업의 부활 없이도 경제를 자극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다. 이른바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해 자산 가치를 끌어올려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거대한 투기 자본이 형성됐고, 기술 분야에는 끊임없는 벤처 자금이 유입됐다. 닷컴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이런 투자 환경은 꾸준히 유지됐다.

다른 한편 제조업의 구조조정은 비대한 조직을 날씬하게 만들고 노동을 절약하는 생산의 합리화를 낳았다. 기업은 핵심 인력과 사업만 내부에 남겨두고 거의 모든 자산과 인력을 외주로 돌렸다. 복지국가의 해체와 함께 이런 흐름은 점점 더 불안정한 노동을 확대했고, 실업자뿐 아니라 명목상의 사업자에 불과한 독립계약자를 양산했다. 1970년대 시작된 이런 장기 경향은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을 거쳐 기술 분야까지 꾸준히 확장됐다. 노동의 불안정화, 제삼 세계의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디지털 경제는 재빨리 성장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차원은 플랫폼 기업의 현재이다. 데이터는 서로 다른 수많은 집단이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활동한 기록이다. 플랫폼은 이런 다른 집단을 매개하는 기술적 하부구조를 제시한다. 이런 위치성 덕분에 플랫폼은 과거의 어떤 사업모델보다 데이터 확보에 유리하다. 그들은 거의 자동으로 이용자의 활동을 추출하며,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 가공, 판매해 이윤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사업모델이 됐다.

이 책에서는 데이터 추출과 활용 방식에 따라 플랫폼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그것은 광고 플랫폼(구글, 페이스북), 클라우드 플랫폼(아마존, MS), 산업 플랫폼(GE, 지멘스), 제품 플랫폼(집카, 스포티파이), 린 플랫폼(우버, 리프트)이다. 다섯 가지 유형은 사업 영역과 가치 창출 방식이 달라도, 데이터 확보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원료를 놓고 팽창한다는 공통 경향을 지닌다. 더욱이 데이터는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일수록 더 많은 쓸모와 가치가 생긴다. 따라서 성공한 플랫폼 회사는 ‘자연적’ 독점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차원은 이와 관련해 플랫폼의 미래를 다룬다. 더 정확히는 플랫폼 산업에서 경쟁이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독점이 강화될 것인지 전망한다. 데이터의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플랫폼에서는 독점이 나타나지만, 데이터 추출을 놓고 거대한 플랫폼 회사 사이에는 사활을 투쟁이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데이터 추출의 잠재력이 보이는 모든 벤처회사를 사들인다. 일례로 구글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에 투자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벤처를 사들인다. 이런 식의 경쟁이 이어지면, 거의 모든 회사가 직접적인 경쟁자로 변할 것이다.

막대한 벤처자금, 데이터의 외부효과, 이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권력 덕분에 플랫폼 모델은 점점 더 덩치를 키운다. 기술 분야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생산 및 관리비용, 거래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개선하고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플랫폼은 애초의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집값을 올리고 소음과 매연을 유발하는 등 반사회적이고 반생태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이미 플랫폼 노동자는 저항에 나서고 있다. 우버의 운전자는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고 단체 행동에 나섰고, 2019년 말 캘리포니아에서는 ‘긱경제’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독립계약자, 임시직을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른 한편 지자체, 국가, 초국적 수준에서 플랫폼 회사를 규제하는 각종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뉴욕에서는 공유 택시 드라이버의 최저임금을 도입하고 면허제를 고려하고 있다. 이런 반격과 규제가 성공한다면, 플랫폼 회사(특히 공유경제 모델)의 수익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플랫폼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글로벌 자본주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일부 국가나 산업에서는 특별 잉여가 생길 수 있지만, 그리고 플랫폼 기업은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비플랫폼 회사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가 나아졌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악명높게도 플랫폼 회사는 매우 적은 인원을 사용하기에, 고용 면에서도 플랫폼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10년간 우리가 경험했듯이 사유화된 플랫폼, 즉 ‘플랫폼 자본주의’도 가능하지만, 공적인 플랫폼도 가능하다. 저자는 결론에서 ‘플랫폼 집산화’를 넌지시 얘기한다. 그 방식은 열려 있지만, 최근까지 공적 규제, 플랫폼 협동조합, 공유 도시·비영리 플랫폼·국유화 등 민주적 플랫폼이 실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라는 기술적 하부구조를 전유해, 공공의 복리와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기아와 전쟁, 실업 등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이 유토피아주의로 보일지 몰라도, 유토피아의 당파인 좌파는 이런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모든 미래의 좌파는 정치적으로 유능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유능해야 한다.’ 꼭 좌파가 아니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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