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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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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재근
  • 승인 2020.06.04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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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벤슨 지음 | 양병찬 옮김 | 페이퍼로드

정신이 신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젠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이 자리 잡은 건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다. 정신과 신체가 철저히 분리돼 있다는 데카르트적인 인간관이 지배적이었던 1970년대만 해도 하지만 ‘정신 집중 기법이 신체에 유익하다’라는 저자의 논문은 주류 의학계에 반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폐렴과 결핵이 약물만으로 치유가 가능해졌고, 내·외과 질환도 수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돼 웬만한 질병은 의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수술대에 오른 환자의 정신적 공포와 신체적 고통은 마취 주사를 통해 완화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의료 기술의 발달로 학계에서 자가 치유 이론은 불필요한 미신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하버드대 교수 허버트 벤슨은 이러한 의학계 주류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신과 신체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그 연구 성과를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책은 출간 후 미국 내에서만 4백만 부가 팔려나갔고, 13개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소개되었다. 미국국립보건원은 이 책이 이룬 성과를 인정하고 정책에 받아들였으며, 하버드 대학에서는 이 책의 연구를 지속하는 심신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저자인 허버트 벤슨을 소장으로 초빙했다. 이 책이 바로 심신의학 분야의 정전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완반응The Relaxation Response?이다.

지금이야 상식이 된 것이지만 당시 의학계에서는 스트레스와 혈압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버드대 병원에서 심장전문의로 활동하던 저자는 자신이 혈압약을 처방한 환자들이 종종 현기증을 호소하거나 실신을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 컨디션이 좋던 환자들도 종종 짜증스럽고 무기력해지는 부작용을 경험했다. 원인은 저자가 처방한 혈압약이었다. 혈압약으로 인해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져 생긴 부작용을 환자들은 보이고 있었다. 표준의료지침에 따른 처방이었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필요한 혈압약은 표준의료지침보다 훨씬 적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이들은 약이 필요한 고혈압 환자가 아닌데도 진단에서는 약이 필요한 고혈압 환자로 나타났다.

고민하던 저자는 이런 추론을 하기에 이른다. “병원에서 의사 앞에서 환자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들의 고혈압 증상을 과장시킨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스트레스와 고혈압 사이의 모종의 관계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스트레스와 혈압상승간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저자는 병원에서의 임상경력을 중단하고 하버드 의대 생리학과 연구원이 돼 그의 멘토인 A. 클리포드 바거의 후원 속에서 스트레스와 고혈압 간의 연구를 시작했다. 원숭이를 통한 혈압과 두뇌의 상관관계 실험으로 이 가설을 입증했다. 세계 최초로 스트레스가 혈압 상승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의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연구였다.

명상을 통해 혈압이 내려간다는 것을 확신했던 초월명상(T.M) 수행자들이 저자에게 자신들을 연구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저자는 UC 어바인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T.M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하던 로버트 키스 월리스와의 공동 연구를 한다. 두 공동연구자는 명상하는 이들의 심박수, 대사율, 호흡률을 실험하고 연구해 명상이 놀랄만한 생리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현장에서 즉시 이러한 현상을 ‘이완반응(Relaxation Response)’이라고 명명했다.

우리 몸은 위험상황, 즉 스트레스 상황을 맞으면 ‘투쟁’하고 ‘도피’하는 반응을 하며 혈압을 증가시킨다. 반면 우리 몸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반응이 있고, 이 반응은 정신과 몸의 긴장 상태를 해소해 우리 몸을 정상 컨디션으로 되돌린다. 이 되돌리는 과정이 바로 이완반응이다.
명상과 같이 긴장을 완화하고 정신을 평온하게 하는 이완훈련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질병을 스스로 치유한다. 이러한 이완반응 개념을 소개하고 이를 촉발시키는 명상법이 제시된 것이 그의 첫 저서 『이완반응』이다. 이 책의 주장은 의학계는 물론 일반 환자들의 삶과 치료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는 상식이 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개념은 허버트 벤슨 교수의 이 책을 통해 자리 잡은 것이다.

저자는 『이완반응』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도 관련 연구를 지속했다. 그의 관심은 단순한 명상에서도 이완반응을 얻을 수 있는데 고급 명상을 하는 승려들에게는 어떤 효과가 나올지였다. 하버드대를 찾은,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달라이 라마와 교분을 맺은 덕에 허버트 벤슨 교수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수도하는 승려들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명상중인 승려들의 혈압 변화를 체크하기도 했다. 티베트 승려들은 영하 18도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작은 천조각 하나만을 걸친 채, 그것도 모자라 축축한 천을 몸에 두르고 고도의 명상을 수행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체온증에 걸려 사망했을 상황에서 승려들은 열을 불러일으키는 명상을 하면서 축축한 천을 바짝 말렸다. 그들의 명상법은 단순했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 후 체내의 기맥(氣脈)을 따라 돌고 있는 불과 열을 한데 모은 다음, 그 불로 ‘온갖 부적절한 생각들’을 태워버려 심신을 정화하는 것이었다.

벤슨 교수는 티베트 승려들의 명상기법을 ‘이완반응법’으로 재현했다. 곧 이완반응을 촉발해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해 건강상 이점을 챙긴다. 그리고 정신을 더욱 집중해 마음을 문을 열고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이뤄질 경우의 모습 등 ‘자신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떠올린다.

미국국립보건원(NIH) 기술평가위원회는 “모든 형태의 만성 통증 치료법에 이완반응을 통합해야 한다”고 평가했고, 1999년 이 상원과 하원 모두 미 전역에 허버트 벤슨 박사가 주도하는 ‘심신요법센터’ 설립에 1천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을 승인했다. 벤슨 박사의 이완반응을 기반으로 한 자가치유법은 환자들의 각종 질병을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보건의료비를 500억 달러 이상 절감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허버트 벤슨은 의료비 절감과 적절한 치료라는 이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벤슨 박사가 바라는 것은 기술과 마음이 조화되어 서로 떠받쳐주는 의학의 미래다. 벤슨 박사는 환자의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의학의 미래를 세 개의 다리가 받쳐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의약품, 둘째 외과적인 치료 마지막 셋째는 자기치유, 즉 셀프케어(self-care)다. 박사가 주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환자가 자기 질환의 60~90%를 셀프케어에 맡긴 채 적절한 약물과 외과적 치료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심신의학에 도입된 현재까지도 다양한 질병 치료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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