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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 역정
천로 역정
  • 조재근
  • 승인 2020.06.04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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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천로역정

 

존 번연 지음 | 정덕애 옮김 | 을유문화사 

 

1678년에 초판이 출간된 『천로 역정』은 존 번연이 1688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11판을 찍은 베스트셀러였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감회와 전도라는 기본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저자가 현명하게 대중적인 이야기 구조를 택했기 때문이다. 『천로 역정』은 인기 있던 기사도 이야기와 꿈 이야기가 합쳐진 알레고리 구조의 작품이다. 기사도 이야기는 기사의 모험을 여정 형태로 서술하면서 반복적으로 적과 싸운다. 이때 용이나 거인 같은 괴물 또는 초자연적인 악이 적으로 등장해서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은 온갖 시련을 이겨 내고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영웅의 성장 과정은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야기 구조 가운데 하나다.

꿈을 이용한 알레고리는 기사도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중세 때 즐겨 사용한 형식으로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법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천로 역정』은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두 가지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본서는 이러한 이야기 구조에 좀 더 집중해 기존에 번역되었던 『천로 역정』이 종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작품이 지닌 문학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번역하고 편집되었다. 이를 위해 원서에서 번연이 단 종교적 해설 가운데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내용을 생략했다. 또한 인용한 성경 구절의 출처를 문장 끝마다 표기하는 대신 모두 미주로 처리해 독서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외에도 역자는 의인화된 수백 개의 추상 명사가 지닌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 예를 들어 요리사로 ‘Taste-that-which-is-good’이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역자는 이것을 ‘좋은 요리 맛보기’로 번역해 독자들이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때 가독성을 위해 하이픈은 제외했으며, 기존 역서에서 한자 이름으로 번역되었던 인명 역시 한글로 모두 풀었다. 이러한 주석 배치와 인명 표기 등은 『천로 역정』에서 인용된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거나 해당 인물의 성격을 유추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곧장 주인공의 여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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