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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말의 절대성
[딸깍발이]말의 절대성
  • 교수신문
  • 승인 2001.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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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3 10:38:45
오늘날 연극은 어떤 것을 줄 것인가? 실망, 아니면 기대. 어떻게 연극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연극은 무엇을 원하는가? 연극은 역사와는 어떤 관계를, 어떤 연극의 역사를 남길 것인가?
바츨라프 하벨이 말한대로 연극은 말들의 무덤처럼, 말들의 최후의 무대가 될 것인가? 연극은 볼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어떻게 연극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가? 아니면 확인시켜야 하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벌써부터 텔레비젼과 영화같은 것이 독점하지 않았는가?
연극은 살아있는 말들이 모여있는 장소이다. 연극의 말이란 살아있고, 유일하고, 모방할 수 없는 말이다. 사회와 그 비극적 정황들과 사람들의 고통과 원한,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결핍의 시대가 요구하는 아주 귀중한 연극의 반성이 아니겠는가? 연극은 원초적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제의, 신비, 텍스트의 아름다움으로.
독자들이 한번 연극배우가 희곡 안에 쓰여있는 대사를 발음하는 연습장을 보았다면 놀라고 말 것이다. 독자들이여 보라. 무수하게 반복되는 똑같은 대사들 앞에 경건하게 몸을 세우고 말하는 배우를. 배우의 몸으로부터 울리는 말들은 나갈 뿐 되돌아오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 울린다. 되돌아오지 않는 말들의 뒤에 항상 배우의 몸이 있다. 배우의 몸에서 나와 울리는 말들은 메아리가 없다. 저 멀리 사라질 뿐이다. 그 사라질 뿐인 말들을 위하여 배우는 온 몸을, 온 정성을 다하여 소리내고, 몸을 움직인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그리고 사납게 소리지르기도 하며.
사라지는 말들은 배우의 몸의 고통과 환희를 담는다. 사라지는 것만이 울린다. 많은 연출가들은 배우들에게 사라지는 말의 울림이 배우 자신의 몸을 울리는 경험을 하라고 요구한다. 어려운 주문이다. 말의 울림이 배우의 몸을 울리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연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배우가 말을 반복할수록 말들은 더욱 견고해지고 결국에는 절대성을 지니게 된다. 연극이야말로 말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요구하는 곳이 아닌가. 따라서 연극을 통하여 우리는 가장 정확하고 바른 말을 듣고 말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말이 말같지 않는 천박하고 궁핍한 시대에는 더욱더.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포샤의 말 하나:“내게 빛light을 주시되 나를 가벼운 light 사람으로 만들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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