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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 경제가 에우다이모니아의 ‘좋은 삶’을 견인할 수 있을까?
[통찰의 재미] 경제가 에우다이모니아의 ‘좋은 삶’을 견인할 수 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20.06.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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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집권 경제학 | 한성안 저 | 생각의길 | 페이지 484

진보, 경제 문제 무능하다는 편견 넘어서야
정부 역할 강조…케인지언의 제도경제학 기반
이론적 방어 논리 제공, 실용적 가치 전달

인간의 삶은 모두 경제적이다. 물화된 삶의 양식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는 애초 가치중립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이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문제란 얘기다. 먹고사는 것을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경제 문제만큼 이념적인 것도 없다. 세계는 지난 21세기 내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거대한 체제 경쟁을 했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구했던 동유럽의 몰락과 함께 역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일방적 승리를 선언했다. 이처럼 경제 이념의 대결에서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왜 저자는 경제 체재 경쟁에서 패배한 ‘진보’ 이념에 기초한 경제학을 시대 대안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것인가.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식민지 해방과 분단, 근대 국가 수립의 과정에서 이념적으로 친미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경제 철학은 그동안 철저히 미국보다 더 보수적인 자유 시장경제를 지향해왔다. 그것은 경제 정책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보수 성향 정부냐 진보 성향 정부냐에 차이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이 신봉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좌우를 막론하고 진리로 인식돼왔고, 자유방임 시장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부조차 경제 성장을 위해 규제 개혁을 외칠 정도였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철학도, 경험도, 이론도 부족한 비전문가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보수는 유능하나 부패하고, 진보는 정직하나 무능하다’는 명제가 진실로 여겨져왔다. 저자가 굳이 스스로 독자의 범위를 축소하고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진보’라는 이름까지 붙여 책 제목을 붙인 배경이 바로 이런 데 있을 거라 추측한다. 즉, 경제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 가치 지향이 이념적 열세를 넘어서기 위해선 진보는 무능하다는 기존의 편견을 넘어서야 하고, 논리적, 이론적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는 데 저자의 문제의식이 기초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동안 경제는 사실상 보수의 강점으로 인식돼 왔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주의 시장의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자유 시장경제의 신념은 이념을 떠나 한국 사회 공동의 믿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IMF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은 개인과 가계를 희생해가며 정부와 기업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기까지 했다. 소위 주류 경제학의 낙수효과가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IMF 사태가 발생한 1997년으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신봉해왔던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옳았다면 왜 지금과 같은 풍요의 시대에 사회경제적 갈등은 더 심화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보수적 이념에 기초한 주류 경제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저자는 이를 분배 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적 이념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의 근거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의식은 최근 다양한 매체 강연을 통해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비판한 중앙대 김누리 교수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인간의 욕망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체제이긴 하지만 문제는 자본주의가 정작 인간을 소외시키고 심지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놔두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인간을 황폐화하고 인간을 말살하는 살인 기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경제 문제에서 소외되고 추방당한 인간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진보 경제학의 기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니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는 “마르크스 경제학은 비판을 위한 무기일 뿐 대안으로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는 저자의 언급에서 드러난다. 저자가 의미하는 진보 경제학이란 고전적 의미의 마르크스 경제학은 진보 내에서도 이미 실용적 학문으로서는 폐기됐다고 보고, 그 문화 사회적 바탕을 케인지언, 즉, 경제와 제도가 분리될 수 없듯이 경제와 국가도 분리될 수 없다고 보는 제도경제학에 두고 있다. 이제는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실제 현실에 있어서는 시장의 일반균형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고, 정부와 제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재난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조속히 나눠주라고 트럼프 정부에 촉구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진보 진영에 지적 기반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목차 제목에서 면면히 읽힌다. 이 책의 장점은 일반적인 경제학서와는 달리, 보수진영의 비판을 받는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문제, 최저임금 등 지금 현 정부 가 추진해 온 최근의 주요 경제정책들에 대해 일방적 진영논리에 포획되지 않은 이론적인 방어 논리들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실용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최근 한국의 경제는 예전처럼 선진국의 제도와 해법을 베껴서 발전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에 있어서 전염병 확산 방지뿐 아니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서도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이제 우리가 찾아낸 해법이 세계 경제문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 스스로에게 인식시켜주고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추천할만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상관없이 좋은 삶, 최상의 삶을 의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삶과 지속 가능한 삶, ‘인간다운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을 권한다.

김선진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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