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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강의시간-0점 없는 시험의 이유
나의강의시간-0점 없는 시험의 이유
  • 이진희 영산대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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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의 종국적 목표는 지성인으로서의 리더십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고 나면 한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조직을, 사람을 이끌고 가야할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학기 교과목을 개설할 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앞선 생각을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알량한 답을 가지고 강의계획을 세워보곤 한다.

어느 해 긴 방학을 보내며 우연히 마주한 한 권이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해줬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Next Society'에서 미래사회를 지식사회라고 규정하며 지식근로자만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지식사회에서 지식정보의 독해력과 함께 지식근로자의 요건으로 국제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강조했다. ‘서양문화기행’과 ‘서구시민사회의 이해’ 등의 지역연구분야 과목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탄생했다.

체험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 또는 지역을 한정된 시간에 심도 있게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체험을 강조하는 수업 방식을 택하게 됐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인간적 동질성과 각 문화의 특수성을 늘 함께 대비시켜 봄으로써, 친밀함 속에서 타 문명을 이해하도록 했다.

이는 나의 유학시절 경험이 크게 바탕이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음식을 보면 얼굴을 찡그리고 멀리하는 반면, 독일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맛을 보려 달려드는 모습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근본적 접근방식의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에 있어 무엇보다 ‘눈높이 교육’을 내 강의의 최선으로 꼽는다. 학창시절 유명한 교수님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유명세와는 달리 강의내용은 매우 난해했다. 교수님은 말을 더듬으시고 강약이 없으셨으며 교탁에서 떠나시질 않으셨다. 심한 경우 수업내용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갔는데도 한참동안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그 교수님과 따로 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눈높이에 맞춘 강의방식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우선 요즘 학생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곤 한다. 시간 나는 대로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접하는 기회를 종종 가진다. 공감대도 형성하면서 새로운 많은 정보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강의실을 생동감으로 채워주는 비결이기도 하다.

또 강의실을 온통 휘젓고 다니며 마음대로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꼭 답을 받아냄으로써 일방적이기 쉬운 수업에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노력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된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날 때쯤이면, 온갖 질문과 튀어나오는 침세례를 감수하면서도 강의실 앞쪽에 앉으려는 고정멤버들이 나타난다.

나아가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계발해 주는 것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똑같은 시험문제로 매번 한 가지 정답만을 찾아 평가하는 우리의 교육평가 시스템에서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 강의의 경우 평가기준에서 창의성과 논리성이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시험을 볼 때 1-2개의 주제를 주고 나름대로 답을 만들어 가도록 요구한다. 어떠한 경우든 답을 만들어 냈다면 결코 0점을 주지는 않는다. 이는 지난 시절 나의 지도교수께서 세미나 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한번도 "No"라고 학생들에게 말하시는 걸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부족함 많은 나의 강의를 열심히 수강해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인터넷과 씨름하며 수강신청을 하고나선, 읽어오란 책 다 읽어오고, 이 질문 저 질문에 당혹했을 그 친구들. 그래도 함께 웃고 함께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지도 모르겠다.

강의는 분명 나에게 신명나는 일이다. 강의 속에서 나의 모든 것을 분출해내고, 땀을 닦으며 나서는 강의실 뒤로 들려오는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그 기분을 누리고 사는 우리 교수들은 이 세상에서 몇 안되는 행복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이진희 교수(영산대 자유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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