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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입시' 열풍…이공계 학생들 학원가 기웃
때 아닌 '입시' 열풍…이공계 학생들 학원가 기웃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1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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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치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앞둔 대학가 풍경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다”. 요즘 대학가에 붙어있는 의학교육입문검사 학원의 광고 문구다. 내년 의·치학전문대학원 교육입문검사 시험을 앞두고, 대학가와 학원가에 예사롭지 않은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강남의 학원가에는 대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학원생들로 북적되고, 지난 달 29일 동국대 의·치학 전문대학원 입시설명회에서는 1천여명이 넘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대한 열풍을 짐작케 하는 광경이다.

선수과목, 심층면접 등 대학별 전형과 함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의학교육입문검사(미트 MEET : 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 치의학교육입문검사(디트 DEET : Dental Education Eligibility Test)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대학가에서는 이미 미트·디트가 수능에 비견되는 ‘제 2의 입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언제, 어떻게 치러지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2005학년도 의·치의학교육입문검사 시행 기본 계획’에 따르면, 의·치학교육입문검사는 내년 8월에 치러지며, 예비검사는 내년 2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2005년도에 학생을 모집하는 가천의대, 건국대, 경희대, 충북대 등 4개 의학전문대학원은 이미 대학 홈페이지에 입학 전형을 발표해 놓은 상태.

가천의과대학 등 의학전문대학원들이 선발기준인 미트점수, 평균학점, 영어, 전공적성, 심층면접 가운데 미트 점수(40%)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어, 미트·디트에 대한 관심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의·치학전문대학원 현황

◇ 의학

전환연도 모집연도 대학 정원(명)
2003 2005

가천의대
건국대
경희대
충북대

40
40
60
25
2004 2006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북대
포천중문의대
125
80
140
120
40
2005 2007 이화여자 80

◇ 치학

2003 2005 경북대
경희대
서울대
전남대
전북대
60
80
90
70
40
2004 2006 부산대 80

□ 미트·디트 시험은 무엇을 평가하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하면, 의학교육입문검사는 언어추론, 자연과학추론Ⅰ, 자연과학추론Ⅱ 영역으로 구분돼 치러지며, 자연과학추론Ⅰ에서는 생물학을, 자연과학추론Ⅱ에서는 화학, 물리학, 수학·통계학 분야의 사고력을 평가할 예정이다. 치의학교육입문검사는 여기에 ‘공간능력’ 영역을 추가해 평가한다. ‘공간능력’은 치과의사에게 필수적인 공간관계 능력, 시각화 능력, 시각기억 능력 등을 측정한다.

김주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의·치의학교육입문검사개발 팀장은 “미트·디트에서는 ‘실험’을 강조할 예정인데, 그 경우 문제 풀이 중심의 사설 학원의 교육보다는 대학교육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대학 입시에 이어,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학원의 성황이 대학교육의 사교육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을 양산할 것이라는 지적을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 또 김 팀장은 “전공영역에 대한 세부지식이 없더라도 대학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거나 마칠 예정인 수험생이면 주어진 정보와 종합적 사고력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항을 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설학원의 암기식·주입식 공부를 겨냥한 지적이었다.

□ 문제점은 없나 = 애초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은 대학입학 단계에만 한정돼 있던 의사양성 교육과정을 대학원 과정으로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됐다. 과열된 의과대학 입시 열풍을 잠재우고, 대학 학부 과정에서 기본교양과 기초학문 연구 자질을 기른다는 취지다. 그러나 사설 학원의 기승은 이미 ‘대학입시 사교육비 절감’ 등의 효과를 나타내기 보다는 또다른 ‘입시’ 제도 도입,  대학교육의 공동화, 기초과학 분야 소외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진하 서울대 생명과학부장은 “이공계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는 마당에 국가가 오히려 이공계 기피를 장려하고 있다”라며 의학전문대학원의 성급한 도입에 우려를 나타났다. 또 정 교수는 “기초학문을 육성한다는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이미 서울대 이공계의 상당수 학생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기 위해 입시 학원을 다니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을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는 지적이었다. 미트 시험에서 생물학 분야, 화학 분야의 문제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이들 분야를 전공한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는 일도 허다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의사, 변호사, 검사 등에 대한 사회적 선호가 지나치게 팽창한 한국사회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이 무수한 이공계열 학생들을 ‘의학교육입문검사’에 매달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공계대학장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방재욱 충남대 교수(생물학과)는 “장기적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가는 것이 맞지만, 사회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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