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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12: ‘비판적 예술이론 연구모임’
연구모임을 찾아서12: ‘비판적 예술이론 연구모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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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고유성을 찾는 해저탐사팀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엔 수도권 집중현상이란 게 있다. 학문 또한 예외가 아닌데, 특히 예술관련 분야의 수도권 편중현상은 심각하다. 그런데 예술 하려면 부산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대 철학과를 중심으로 뭉친 젊은 학자들의 사랑방 ‘비판적 예술이론 연구모임(이하 예술이론모임)’이 그들이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문화의 시대’에 ‘예술이론’은 무엇인가다. 문화가 갈수록 값싸지고, 정치적 메시지의 그릇 역할을 한다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예술은 이런 문화에도 끼지 못한 채 ‘왕따’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현실파악. 따라서 이른바 순수예술이란 것을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값싼 문화’와 생산적 경쟁을 벌이는 ‘의미로 충만한 문화’로 갱생시킬 것인가가 이 질문에 깔려있다.

이 모임은 2년 전 부산민주공원부설 민주주의사회연구소 문화분과에서 시작됐다.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이성훈 경성대 교수를 중심으로 부산대와 경성대의 젊은 강사들이 결합했다. 박종식, 황지윤, 김명주, 김영희, 김재환, 김동규, 정진우, 이미정 박사 등이 주요 멤버다. ‘예술이론’이라는 타이틀 아래 모였지만, 연구원들의 전공은 프랑스철학, 독일철학, 인도학, 미술사, 예술사회학, 사진학 등 각양각색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이 되면 이성훈 교수 연구실에서는 젊은 연구자들의 독회와 토론모임이 네 시간 가량 열기를 내며 이어진다.

매주 수요일마다 이어지는 독회와 토론

이들을 학문적 동아리로 엮어준 가장 중요한 끈은 ‘방법론의 동질성’ 추구다. 쉽게 말하면 서로 코드를 맞춰나가는 것인데, 이 모임이 택한 것은 ‘비판적 읽기’였다. 이를테면 푸코식의 고고학, 프로이트식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알튀세르적인 유물론을 세 꼭지점으로 한 예술읽기다. 이런 이론들은 대중문화에서 소비돼왔을 뿐, 예술 전반에서 충분한 제 역할을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읽기가 비평행위로까지 나아가진 못한 상태다. 아직까지 연구원들은 기초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9월에 출판된 책은 그 읽기의 소산이다. 부르디외, 베이컨, 들뢰즈, 하버마스, 하이데거 등의 예술이론에 대한 내밀한 비평적 에세이를 모아 ‘비판적 예술이론의 역사’(백산서당 刊)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것. 이성훈 교수는 서문에서 워밍업 정도에 불과한 작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오늘날 예술의 현 상태와 이에 대한 이론적 담론 사이의 대위법적 긴장관계가 역추척”되고 있기에 만만한 읽을거리는 아니다. 여기엔 모임의 도약대 구실을 할만한 문제제기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걸 특징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이마골로지’(imagology)다. 밀란 쿤데라의 용어로 이미지가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는 현 시대를 강조한 패러디 표현이다.

의미로 충만한 문화를 찾아서

쿤데라의 지적처럼, “예술이 곧 문화정치적 표현”인 시대에 그것의 효과를 묻는 일은 이제 너무 흔해졌다. 여기서 더 이상 새로운 게 나올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질문은 워낙 많은 사람이 동어반복을 해서 낡아보일 뿐, 이 땅에서 그리 오래됐거나 진지하게 추구된 질문은 아니다. ‘예술이론’ 모임은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데올로기로 환원될 수 없는 미학 고유영역을 탐색한다. 물론 질문에 답하기란 이들도 쉽지 않다. 다만 칸트의 ‘무관심’,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기원’ 등에 나타난 개념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흘러왔는지 그 사회적, 역사적 과정을 세심하게 분간하면서, 방법과 통찰을 기다리는 ‘육중한 믿음’으로 전망을 만들어간다.

이들 모임이 시작된 지 2년쯤 되자 부산지역 동학들에게도 차츰 알려지게 됐다. 연구원들의 열기도 여전해 참여하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실정이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 같은 뜻을 지녔다면 모이는 건 당연하기에 이들은 궁극적으로 학파를 형성하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다만 아직까진 심포지엄이나 연구활동을 지원해줄 실질적인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는 게 선결과제다. “쫓기듯이 성과물을 내야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일단 이론적 각성에 도달하고자 한다”며 기본적인 연구에 일단 충실하려는 이들은 내후년 즈음에는 깊이 있는 이론서를 낼 계획을 갖고 있다.

이은혜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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