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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리뷰: 철학연구회의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논쟁리뷰: 철학연구회의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 권용혁 울산대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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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주장에 선동적 이념공세 반박도

지난 12월 6일에 열린 철학연구회 추계 연구발표회의 대주제였던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회장인 이한구 교수의 기조 발제문에 이어 두 분과로 나뉘어 각각 다섯 편씩의 논문 발표로 이어졌다. ‘디지털 시대와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다룬 1분과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조화 가능성을 모색했는데, 특히 사이버 공론장에서의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21세기형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보면서 이를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평가할 수 있는지가 논의의 초점으로 모아졌다. (이동수 경희대 교수, 윤평중 한신대 교수, 이상훈 대진대 교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이라는 주제로 모아진 2분과 논문들에 대한 토론에서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지도자가 대중과의 직접 소통에 의존해서 주요 정책을 결정했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21세기 참여 민주주의의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지, 있다면 그 내용은 어떠한지에 주요 논점이 모아졌다. (김우택 한림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서병훈 숭실대 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모두 열 한 편이나 되는 발표문들과 열띤 토론을 짧은 지면에서 모두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잇따른 갑론을박의 과정에서 전체 주제로 수렴하는 논점들이 부각됐다.

1분과 토론에서는 정보화 사회의 정착으로 ‘관객에서 배우로’ 변신한 대중들의 직접 참여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됐다. 전자 민주주의 시대의 수평적 네트워크형 의사소통 방식의 확대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의사소통 참여자들의 익명성과 무책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모순적 동거 분석

2분과 토론에서는 ‘민주주의의 그림자’로서 항상 따라붙는 포퓰리즘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대의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상호 보완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 방안이 제안되었다. 정치철학적인 대안으로는 소수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시민적 공론장에서 의사소통적인 (공적인) 이성에 의거해 의제화하는 방법이 제안됐다.

이번 학술토론회에서는 김일영 교수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평가한 점이 눈길을 끈다. 특히 김 교수는 현 정권의 네티즌을 상대로 한 ‘디지털 참여’ 방식 도입은 디지털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정부의 통치 능력과 책임성을 우선적으로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홍윤기 교수의 주장도 흥미 있는 것이었다. 홍 교수는 현재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는 ‘포퓰리즘’ 담론은 선동적 이념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오히려 이제는 한국 사회가 ‘탈 포퓰리즘 사회’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에 걸맞은 생산적인 사회의제들이 디지털 공론장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모순적인 동거 현상을 인정하면서도 포퓰리즘 담론을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상호보완이라는 모범답안만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풀어가기에는 난망한 상태다. 대선자금 문제만을 보아도 그렇다. 정치엘리트들의 탈법, 불법이 상식이 되어버린 한국 현 정치권과 대의제도에 사망선고를 내려야 할 판이다.

우리의 경우는 부르주아적 헤게모니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준동하는 포퓰리즘을 걱정해야 할 상황은 벗어나고 있다. 건강한 시민사회와 디지털 공론장이 정착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병에 걸려있는 부르주아적 헤게모니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가가 현안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정치지도자들이 다양한 시민사회 세력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정치엘리뜨들이 차떼기까지 하면서 오직 권력 쟁취에만 골몰한다면, 질 높은 민주주의를 이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한 단계 높은 민주주의적 대안 담론과 비전 제시의 몫은 당분간은 권력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시민사회 공론장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시민들이 지혜 모으기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사회 공론장이 ‘탈포퓰리즘 사회’의 선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를 정치권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로 이끄는 관건이기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게 바로 현재 언론을 통해서 ‘포퓰리즘’ 담론들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시민사회 공론장의 새로운 역할 기대

필자의 고민은 다른 데 있다. 이처럼 참여 민주주의의 형태에 과도하게 희망을 건 필자가 포퓰리스트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견제와 협력을 통한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더 나은 상식적인 모범 답안이 빨리 정착되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우선 엘리뜨 정치가들은 스스로 앞장서서 국민들이 정치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 방안만이라도 화급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영역에서 질 높은 민주주의 실행 방안 만들기에 앞장서야 할 때이기도 하다.

권용혁 울산대 철학

필자는 독일 베를린대에서 '홉스의 개인주의 극복과 의사소통적인 입장에서의 구속력 증명'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사회운동과 사회철학, 세계화와 철학의 역할,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그에 대한 철학적 대응 등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 '이성과 사회 : 실천철학 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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