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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새롭게 부상하는 대중담론
담론: 새롭게 부상하는 대중담론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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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대중'에서 '대중독재'까지

1980년대가 ‘민중’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대중’의 시대였다. 대중은 민중이라는 운동세력을 문화 분야에서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로 떠올랐다. 그런데 한동안 뜸했던 ‘대중’에 관한 논의가 2003년 다시 이론적?현실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그 계기는 2002년 대선이었고, 맥락은 대중의 사회정치 세력화로 보인다.

2002년 대선과 네티즌의 부상

이른바 ‘노사모’, ‘붉은악마’, ‘촛불시위대’를 비롯해 P세대 등으로 불리는 대중의 성격 규명을 위해 주요 계간지들은 여름호에서 일제히 ‘대중’을 거론했다. ‘문화과학’ 여름호에서 노명우 서강대 강사는 이를 ‘지적대중’이란 개념으로 파악했다.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대중이 기존 지식인들의 사회역할을 대체하고 있지만, 사이버 공간을 뛰쳐나와 얼마만큼 범사회화 되는가라는 실천적 문제가 남아있다고 그 한계도 지적했다. 노명우의 주장은 새로운 매체를 등에 업은 대중을 긍정적인 주체로 정립하려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외 대부분의 논의는 대중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문학과 경계’ 여름호에서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는 언론과의 관계에서 ‘대중’을 조명했는데, 그는 현재 같은 언론권력 아래 국민은 여전히 愚衆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는 권력지형을 변화시키는 방안으로 대중을 결집시켜내기보다는 지식인과 시민운동단체라는 ‘위로부터의 힘’을 강조하는 논지를 편다. ‘당대비평’은 현 정부에서의 ‘대중참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는데, 대중에 대해서는 실체와 일관성의 확보 등에서 어렵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대중이 ‘참여’하고 있다기보다는 ‘동원’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문화평론가 변정수 역시 인터넷을 통한 대중참여가 대중영합주의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위의 논의는 의사결정적 주체, 사회제도로서의 확고함 측면에서 대중을 여전히 피동적 주체,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최근 한 학술지에서 ‘2002년 대선과 보수’를 발표한 전상인 한림대 교수는 “2002년 대선을 세대교체론으로 보는 것은 선거참여의 분포를 분석해볼 때 잘못됐다”라고 지적해 ‘대중’과 거의 동일시돼온 젊은 세대의 정치적, 사회적 힘을 부정하고, 대중주체론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이런 대중론을 밑바닥에 깔고 최근엔 두개의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10월 24일 한양대 인문학연구소는 ‘강제와 동의: 대중독재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열어 ‘대중독재’ 개념을 본격적으로 공론장에 끌어들였다. 기조발제를 맡은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20세기를 가능케 했던 대중독재는 “시민사회에 군림하는 ‘딱딱한’ 권력일 뿐 아니라 시민사회를 감싸는 ‘부드러운’ 권력이었다”라고 주장하면서, 일상적 파시즘론을 이어갔다. 논지는 근대 이후 ‘폭압적인 독재체제’와 이에 희생당하는 ‘대중’이라는 이분법은 잘못된 개념이고, 산업화시기의 ‘참여’와 ‘동원’의 메커니즘을 포착하려면 위에 언급한 ‘대중독재’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 이 패러다임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등에서도 작동하고 있다고 임 교수는 지적한다.

사회과학적 엄밀성 결여된 대중 분석

지난 12월 6일 철학연구회(회장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주최로 열린 ‘디지털시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세미나에서 발표자들 대부분은 ‘포퓰리즘’을 들고 나왔다. 포퓰리즘이란 정치적 대중영합주의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로써, 이날 대회는 대중참여의 역기능에 포커스를 맞췄다. ‘참여 민주주의’에 기반한 현 정권도 대중영합주의로 몰아세웠다.

이상의 논의의 흐름을 볼 때 ‘대중’은 역시나 蠢動이나 하는 존재에 불과한 듯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회학적 관찰의 엄밀함 보다는, 현 정치적 상황의 흐름에 걸맞은 논의를 생산하려는 뉘앙스가 강하다는 점. 과연 대중에 놀라면서 경계하는 이런 논의틀이 적절한 것인가부터 논의해야 할 시점은 아닐까.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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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2003-12-27 23:57:07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다음에 기사작성할땐 좀더 신중히 쓰겠습니다.

lategreen 2003-12-26 18:30:03
마지막 패러그래프는 근거나 논증도 없이 이 기자의 주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근거를 밝히던지 아니면 그 문단을 빼야만 기사 작성 원칙에 맞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