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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61)]음양이 뒤바뀌는 새벽, 해찰의 시간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61)]음양이 뒤바뀌는 새벽, 해찰의 시간
  • 교수신문
  • 승인 2020.06.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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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하늘이 밝고 땅이 어두워지는 새벽
고요와 적막 속에서 해찰하는 때

새벽의 장점을 말하련다. 내가 이것을 말할 자격은 참으로 없다. 새벽형 인간도 아니고, 아침형 인간에도 낄까 말까 하고, 내 속에 뿌리박힌 게으름이 지겹도록 싫은 사람이다. 늘어지기, 쳐지기, 딴 짓하기, 신문이나 텔레비전 영화보다 시간 다 보내기가 내 일상이다. 멍 때리기는 요즘 나름 유행이라서 변명이라도 되지만 나의 세월 죽이기는 정말 지겹도록 오래되었다. 

나의 그런 모습을 어머니는 ‘해찰 부린다’ 또는 ‘해찰 떤다’고 하셨는데 이게 웬일,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해ː찰 【명사】【~하다 → 자동사】 
① 물건을 이것저것 집적이어 해침. 또는 그런 행동.
②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

내 귀에는 ‘훼찰’로 들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나의 게으름을 꾸짖으셨다니! 나는 ②번이다. 이런 용례 어떤가? ‘김 주사는 출근해서 해찰하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비로소 일한다.’ 나의 용례는 이렇다. ‘나는 하루 종일 해찰부리다 저녁 무렵에서야 글발을 올린다.’

해찰 정세근 선생이다. 해찰(海察) 선생! 어려운 한자로 해찰(海)이라고 하니 누에가 얼마나 부지런히 실을 뽑는데 말도 안 되고, 해찰(海)이라고 하니 바다와 뾰족한 산 모양이 어울리고, 해찰(海刹)이라고 하니 뜻없이 찰나(刹那)가 떠올라 맘에 든다. 나는 바로 이렇게 해찰 떤다. 

얼마 전 스님의 생활을 담은 책(자현, '스님의 비밀')을 보았다. 박사가 엄청 많은 스님이라 오히려 신뢰가 안 갔는데 정말로 지적 호기심이 많고 관심이 일관된 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역사적, 미술사적, 불교 이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쉽게 풀어내는 내공이 빛났다. 잘 알면 쉬워진다. 몰라서 말이 많다. 

그 가운데 스님들은 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느냐는 것에 대한 응답이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시간은 인도 시간인데 시간셈법을 잘못계산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의 시간과 중국의 시간이 달랐는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아서 아홉시면 자고 세시면 일어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더위를 피해 충분히 잘 주무셨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잠을 못 자며 살고 있는 것이다(이건 내 해석이다).  
그런데 수행자이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나쁘지 않고 일찍 저녁 먹고 쉬고 아침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아마도 고치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전통으로 자리 잡았으니 바꾸기도 어렵겠다. 

산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분명히 느끼는 것이 새벽에 일찍 깬다는 것이다. 추워서도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일찍 깬다.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것도 까닭이겠지만 요상하게도 늘어지지 않는다. 산 중 생활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해보다 먼저 일어난다’이긴 했다. 할 일이 많아서 그랬지만 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알지 않는가. 새벽에 일찍 떠난 여행은 하루가 무척이나 길지 않은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연재의 글을 마무리하는데 지금서야 어스름하게 하늘이 밝아온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한밤에는 땅이 밝고 하늘이 어두웠는데, 새벽이 되면서 하늘이 밝고 땅이 어두워졌다고나 할까? 음양이 뒤바뀌는 그 찰나를 어떻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새벽은 그것이 바뀌는 때다. 이때 나는 깨어서 고요와 적막 속에서 해찰한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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