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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사회과학분야
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사회과학분야
  • 김호기 연세대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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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고 진지한 批評의 출현

올해 사회과학 비평의 최대 화두는 노무현정부였을 것이다. 지난 2월 25일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제2단계 민주화의 첫 정부답게 사회과학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았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서 시작한 제1단계 민주화가 이른바 ‘3김 정치의 민주화’였다면, 제2단계의 민주화는 ‘포스트 3김 정치의 민주화’이자, 최장집 교수가 명명한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제2단계 민주화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북핵위기와 이라크파병에서 사회갈등의 폭발을 거쳐 불법 정치자금에 이르는 이슈들이 쉼 없이 분출했으며, 이 이슈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단숨에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려놨다. 게다가 카드채, 청년실업, DDA와 FTA 등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제2단계 민주화의 물질적 기반에 대한 결코 작지 않은 고뇌를 안겨줬다. 

현실이 주는 무게가 과도할 때 이에 대응하는 사회과학적 개입은 이론보다 실천에 더욱 관심을 두거나 또는 그 현실에 거리를 두는 법이다. 그러기에 올해 사회과학 비평은 ‘황혼녘에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도 유사했으며, 이른바 ‘이론적 실천’은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분출하는 현실에 대해 새로운 암중모색을 추구해 온 것이 2003년 사회과학 비평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와중 그래도 시선을 작지 않게 끌었던 게 교수신문의 비평난이다. 이 난은 본격서평과 논쟁서평을 도입함으로써 주례사적 서평을 넘어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일구려 했다.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아카데미 영역 안에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그것도 의례적인 게 아닌 비판적 서평을 유도한다는 건 우리사회처럼 학문적 청중의 규모가 엷은 곳에선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에 서평자는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난은 거침없고 진지한 비판이 담긴 일급 서평을 꾸준히 제공함으로써 생산적인 토론문화의 기반을 마련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올해 서평의 백미는 교수신문 쟁점서평 중 ‘시장주의를 점검한다’다. 이병천 교수가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에 대해, 김영두 교수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해, 김호균 교수가 로만로스돌스키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기고했던 이 서평들은 시장과 자본주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검토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비평은 이론적 논의뿐만 아니라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논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영국 노동당의 경제 기획에 영향을 미친 ‘참여자본주의’에 대한 김균 교수의 서평도 돋보였다. 한때 우리사회에서도 적잖은 유행을 가져 온 ‘제3의 길’에 대한 토론은 세계화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평가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대한 이론적 실천의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적 시각은 김수행 선생 등이 올해 출간한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편 지난 몇 년간 화제를 불러 모은 ‘시민사회’에 대한 탐색은 올해에도 꾸준히 진행됐다. 이라크파병 문제로 촉발된 반전평화운동은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 ‘지구적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으며, 이는 다시 우리 시민사회에 보편적 인간주의와 지구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로 구체화됐다. 이와 관련해 정철희 선생의 ‘시민사회의 궤적’에 대한 윤상철 교수의 비평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가 제시한 ‘동아시아 신좌파론’은 그 문제제기가 다소 설익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시대적 의제들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좌파의 갱신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다.

‘현실의 풍요’는 단기적으로 ‘이론의 빈곤’을 낳기 쉽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이론의 풍요’로 귀결된다. 새로운 이론적 풍요는 물론 이중적 성찰, 즉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기존 담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이런 성찰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다가오는 새해에는 사회과학 비평이 더욱 활발해질 거라 믿는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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