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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 인문분야
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 인문분야
  • 이명원 문학평론가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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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적 태만의 그림자

이명원 / 문학비평가
 
적어도 문학비평의 영역에 한정시켜 말한다면, 2003년은 전 문단이 혼신의 열정으로 논쟁을 진행했던 쟁점이 뚜렷이 부각되지 않은 한 해였다. 문학비평계가 일종의 '조정국면'을 통과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과거에 촉발된 논쟁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얼마간 진행됐던 것이 사실이다.


먼저 미당 서정주 문학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올해도 지속됐다. 미당 서정주의 시를 국정교과서에서 제외시킨 문제를 둘러싸고 시인 손진은과 배창환 사이에 논쟁이 있었고, 미당 문학의 친일적 성격과 이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평론가 이경훈, 김윤태, 이명원 등의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2003년 현재의 평단의 성격과 비평의 의미를 '비판적 글쓰기' 진영과 '문학주의' 진영으로 이분화한 비평가 임규찬의 논의에 대해 비평가 오형엽과 이명원의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몇몇 문예지에서는 현 단계 시 비평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비평이 특집으로 실리기도 했다. 비평가 이숭원과 유성호 등이 이러한 논의에 개입했지만, 비판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의 후속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 논의의 심화와 확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문학 전반으로 시야를 확대해 볼 때도, 뜨거운 '공통의 의제'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 전반 역시 문학비평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조정국면'을 거치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판단을 내려야 할 듯하다. 그러나 내 판단에 적어도 다음 두 사람의 비평적 작업은 뚜렷이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나는 우선 철학자 김진석의 비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사회비평'지의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진행했던 비평들을 갈무리 한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나남출판 刊)가 최근에 출간됐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는 것이겠지만, 이 책은 현 단계의 한국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유의미한 담론적 실천이 일체의 '근본주의'와의 싸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가 이론적 근본주의자로 거론하고 있는 임지현, 문부식, 박노자에 대한 비판의 각도는 섬세하게 보자면 차별적이지만, 대체로 파시즘 개념의 무분별한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담론의 '이론적 모순'과 현실에 대한 '무책임성'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

가령 이런 지적이 그렇다. "세상의 모든 폭력을 없애야 한다거나 우리 안의 모든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근본주의는, 그 엄숙한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현재 속에서는 얼마든지 공허하고 무책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판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김진석의 비평을 2003년 한해 가장 뛰어난 비평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싶다.


또 한번 개인적인 판단을 선명하게 드러내자면, 가장 최악의 비평적 작업을 수행한 인물로 나는 소설가 복거일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5백30여 쪽에 이르는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들린아침 刊)라는 책에서, 엉뚱하게도 친일파를 '소수파'로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묻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기괴한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거일의 주장은, 최근 일본의 우경화 바람에 편승해 일본 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김완섭의 '친일파를 위한 변명' 류와 같은 저작들과 별다른 차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역사의식'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지적 허약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특히 이 저작에 대한 김진석과 고종석의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저작은 역사의식이 거세된 '자유주의'가 다다를 수 있는 '지적 태만'의 풍경을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비평이란 무엇일까. 아카데미의 세련된 이론화의 유혹과 싸우면서, 동시에 논리화되기 힘든, 그래서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과도 싸우면서, 그 양자를 박치기시키면서 글쓰기를 통한 유효한 현실적 개입의 방식과 실천적인 목표를 지속적으로 설정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다가올 2004년의 우리 비평계가 아름다운 혼란(?)으로 명명될 수 있을 지적 '역동성'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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