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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 과학환경 분야
2003 비평계를 돌아보다 : 과학환경 분야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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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생명 이슈 공유...'계몽'에 멈춘 과학서평

네 권의 저널을 통해 과학계의 비평활동을 돌아볼 수 있다. 특집과 논단 등을 통해 과학 전반을 포괄하는 ‘과학사상’, 환경문제에 관한 학적 관심을 아우르는 ‘환경과 생명’,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문명비판을 해나가는 ‘녹색평론’, 과학학술도서에 대한 전문가 서평을 싣는 ‘서평문화’를 보자.

이들 책의 1년치에서 느껴지는 건 과학계의 ‘총체적 비평부재’ 현상이다. 물론 대정부, 대사회 발언은 화려하지만, 적어도 과학계 내부에서의 의견조율과 논의상승을 꾀하는 비평적 부딪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가장 익숙한 비평공간인 ‘서평’ 장르에서도 눈길을 끄는 멘트가 없었다.

우선 국내 학술도서가 많지 않았고, 몇 권의 책에 대해서는 권장도서 소개글을 방불케 하는 리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웠다. 지난해에서 넘어온 것들이지만 뜨거운 주제들이 없지는 않았다. 특히 환경 쪽에서는 이슈가 많았는데, 새만금간척사업을 둘러싼 논쟁, 핵폐기장 설치에 대한 비판,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반대논의들이 펼쳐졌고, 특히 ‘환경과 생명’ 가을호에 실린, 조명래 단국대 교수가 새정부의 ‘신개발주의’를 한국적 맥락과 서구적 맥락을 교차시키며 명료하게 정리한 것은 일종의 ‘비평적 토대구축’의 차원에서 주목할 만했다.

새정부 신개발주의·생명-윤리 비판의 무게

과학 분야는 새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한 방향제시 차원에서 시론들이 많았다. 유전자공학의 발달로 촉발된 ‘생명 윤리’에 대한 관심이 소폭 상승했고, ‘물’에 대한 담론들이 다소 흘러 다녔는데, ‘과학사상’ 겨울호에 실린 이진우 계명대 교수의 글도 성과라면 성과다. 생명공학을 정신분석학으로 다룬 슬라보예 지젝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그는 “하이픈 윤리인 ‘생명-윤리’는, 유전자공학이 인간을 게놈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반감만 표할 뿐, 그것이 인간의 내재적 의미체계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부분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서평문화’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중계몽의 서평을 싣고 있다. 올해 총 7권의 전문도서를 평했는데, 번역서가 6권이고 국내서가 1권이다. 서평방식은 책 내용을 따라가며 요약하고 끝에 아쉬운 점, 번역에 대한 코멘트를 덧붙이는데 대부분 소략하다. “통계도표가 너무 많아 지루하다”(‘수소경제체제를 위하여’), “분명치 못한 번역문장이 많다”(‘우주의 점’) 등이 주류를 이룬다. 비평이 된 부분은 ‘휴머니즘의 동물학’에 대해 박시룡 교수가 “원숭이 수컷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견해차이”를 밝힌 부분이 유일할 정도다.

‘녹색평론’에서는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에 실린 김석철 명지대 교수(건축학)의 글에 대한 반론이 몇편 올라왔다. 새만금과 관련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모델을 벤치마킹한 그의 해상도시 아이디어에 대해 “또 하나의 위험한 개발논리”라는 글들이 맞섰는데, 인권과 환경보존론에 입각한 공격에 가까워 지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환경 분야는 운동과 비평의 차원이 구분되지 않는 게 근본문제인 듯하다.

‘녹색평론’에는 반전, 평화, 영성, 환경과 관련된 책이 꾸준히 소개되는데, 저자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에게 글을 맡기는 게 옳은 방식인지 의문이 든다. 해외 생태주의 서적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실천이 어떤 분야에서 순차적으로 가능하며, 어떤 식으로 변형돼야 하는지 등에 관해 생태실천가 동아리를 넘어서는 객관적 리뷰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다. 계속적인 동조는 밖에서 볼땐 일종의 ‘팬덤’일 뿐이다.

오히려 올해 ‘녹색평론’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여부를 떠나 많은 주목을 모은 글은 역서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국내수용을 평한 출판평론가 최성일 씨의 글이었다. 앞의 이진우 교수의 사례도 그렇고, 다른 분야에서 파견된 이들이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지, 과학계의 답변을 요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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