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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역사해석에서 탈피하라"
"시대착오적 역사해석에서 탈피하라"
  • 김기봉 경기대
  • 승인 2003.12.18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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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역사전쟁 부르는 '韓中 고구려사 논쟁'에 부쳐

나는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의 고구려를 둘러싼 '역사전쟁'의 일촉즉발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역사는 과연 인간의 삶을 위해 유용한가 유해한가를 물었던 니체의 문제제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내가 반시대적 고찰을 하는 이유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역사 찾기 운동'에 학계와 정치계가 가세하여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이 과연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회의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라는 과거가 현재의 우리와 중국에게 왜 중요한가. 고구려 역사를 둘러 싼 한국과 중국 사이의 역사논쟁의 진의는 과거의 인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권력투쟁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이 물음을 역사적 패배주의가 아니라 역사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현 사태의 위기를 성찰해 볼 목적으로 제기한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한국의 역사는 중국사와 일본사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은 한국사의 결정적인 영향력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런 한국사의 구조가 얼마 전 일어났던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의 근본원인이다. 이번의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분쟁 역시 근대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라는 뇌관을 드러내는 예정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전자보다는 후자의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역사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

일본과의 역사청산은 피해의 당사자가 생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지만, 고구려사는 까마득한 고대의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을 일본 새 역사교과서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요컨대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중국학계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결론 없는 소모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러한 소모전의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정치계는 일본 새 역사교과서 파동 때처럼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을 수 있고, 한국사학계는 침체된 고구려사를 일으키는 효과를 바란다. 하지만 중국과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일 때 발생하는 손실은 없는가. 정부는 겉으로는 중국에 강력 대응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모순적인 생각으로 정부가 중국정부와 한국국민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궁극적으로 누가 피해의 당사자가 될 것인가.

 우리는 중국과의 전면적인 역사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손익계산부터 해봐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불리하다. 첫째는 고구려 대부분의 유적이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다는 것이고, 둘째 남한에게는 북한이라는 또 다른 한국사의 주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남한 사학계에서 고구려사 연구가 침체된 주 요인은 연구대상의 현장이 북한이고, 또 고구려사는 북한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가 기피되었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현실정치에서 북한이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고구려사 문제로 남북이 공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연구 인력과 재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중국에 비해 열세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주장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나는 우리의 현실적인 대응전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사가 일본사와 중국사와 충돌하는 것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보는 기존 한국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역사를 '국사'로 보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해체이지, 그것의 강화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의 '국사'의 위기를 한국사를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선험적으로 설정하는 '국사'의 해체가 요청된다. 

필자가 아는 한, '국사'로 씌어진 종래의 한국사는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 중국이란 무엇이며 근대 이후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민족을 코드로 해서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결정하는 역사서술이 이런 '국사'를 낳음으로써, 고구려사를 고구려사 자체로 인식하는 것 대신에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의 역사주권 싸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현사태를 초래했다. 물론 현사태 발생의 직접적인 책임은 전근대적인 중화사상을 근대적인 중화민족주의로 변용시키는 데 복무하는 중국 역사학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양의 고대와 중세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아닌 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이 있었던 것처럼, 고구려의 역사무대는 오늘날의 용어로 동아시아이다. 만약 역사적 비교가 가능하다면, 서양사에서 전근대의 동아시아에 해당하는 것이 유럽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실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발명된 상상의 공동체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유럽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었으며, 보편적 제국으로서 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이란 그것을 대신하는 기독교세계였다.

17-18세기 구체제 시대에서 유럽은 세력균형의 원리로 묶어지는 왕국들의 총체였으며, 19세기 민족주의 시대에는 국민국가들의 집합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은 민족주의로 고양된 국민국가들 간의 전쟁터였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에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유럽공동체의 이념이 재발견됐다. 특히 독일통일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이후 유럽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의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 같은 맥락에서 유럽 각국의 역사학은 '국사' 위주의 근대 역사학을 지양하는 유럽사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야

서양 중세에서 유럽이 기독교를 토대로 한 보편제국이었다면, 근대 이전 동양의 보편질서는 '중화'이다. 동양 고대에서 고구려 대 수·당의 전쟁은 이러한 중화질서 성립과정의 일환였다. 고구려 멸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쟁들은 동북아 일대에서 독자적 생존권을 보전하고 패권을 추구했던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중국 중심의 일원적 질서로 주변의 세력들을 포섭하고자 했던 수· 당의 세계정책의 충돌로 일어났던 동아시아 전쟁이었지, 결코 민족간의 전쟁이 아녔다. 7세기 나당 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했던 것의 결과로 중화질서가 성립했으며, 근대에서 한·중·일의 국민국가의 형성은 이러한 중화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한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 2 나당 전쟁, 중국과의 역사전쟁이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론에서 신라는 한국인가 중국인가. 이렇게 근대의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의거해서 전근대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우리 삶의 현실은 날로 세계화로 나가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눈은 아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의 책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그 책임은 없는가.

이제는 민족이라는 기원의 망상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사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동아시아 관점에서의 한국사 재구성이 필요하며,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논쟁이 '국사'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는 역사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기봉 / 경기대,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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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2004-03-19 00:49:48
역사라는 것은 가능한 한 사실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지만 오래된 고대사일 경우, 결코 100%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역사는 현재의 시점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변을 살펴보면 여러 역사 관련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있습니다. 그중에 특히 고대 한국역사를 보는 관점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자면 첫째, 보수민족주의적 역사관. 둘째, 객관적인 신(新)역사관. 일단 보수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역사가들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한국의 역사는 우수하고 한민족은 타 민족에 비해 문화가 매우 뛰어나다...또한 용맹스럽고 지혜롭고 옛날옛적부터 우리 나라는 다른나라를 한번도 침략한 적이 없는, 대단히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 배워왔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좌르륵 나열해놓고 나니 보는 이들은 왠지 너무 민족 이기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표현을 이렇게 하긴 했지만 거짓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들은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역사. 즉, 국사(國史)의 기본 바탕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너무 일방적인 나의 주장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곁에 있는 아무 역사책이나 펴보십시오...우리나라, 우리 민족에 대해 남보다 열등하다던가...타 민족에 대해 모자라는 부분이 서술되어 있는가 말입니다.

근래에 들어 아니, 예전부터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역사가 너무 민족이기주의적이지 않았나 하는것입니다...우리 국민의 사회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구세대적인 역사관은 이제 개혁해야 할 듯 싶습니다.

물론 여태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 고유의 찬란한 역사, 문화...인정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동안 과장되어 왔던 우리의 고대 고구려 라던지 고조선 문제...이제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보다 객관적인 검증을 거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난 아직 학생입니다. 그래서 배울 것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고, 배울 시간도 많습니다. 아직 덜 익은 과실입니다. 탐스럽게 무르익고자 오늘도 양분을 섭취합니다...

김인호 2004-01-09 17:42:08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주의와 그것에 찌들린 우리 한국사의 기왕의 연구에 대한 반성을 지적한 부분은 깊이 새길 좋은 조언입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자국사를 해체하고 일반사에 편입하여 교육하는 나라가 있는지...반문하고 싶네요.

어쩌면 한국사의 보편적 역사발전이라는 관점에서의 해석하고 보다 보편적인 역사인식법으로 우리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세계사에 기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극단적으로 국사해체를 주장하는 논의는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수없습니다...

김교수의 충심은 이해할 수있으나, 지극히 관념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나 곡해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자국사의 해체를 주장하는 태도는 자국사의 민족주의적 해석이 가져온 해악보다 더큰 문제를 가져올 것입니다.

역사전쟁에 대한 손익계산서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구려사 문제는 단순한 민족감정의 문제가 아닌 것같은데...김교수의 지나친 아카데즘이 아닌지...우려됩니다.

어쨌든 좋은 글이라서 열심히 읽었고, 배울 점이 많은 글이었습니다만, 국사해체주장은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들립니다. 분명한 역사침략을 보면서...그에 대한 대응방법이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입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