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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정필승] “관객도 작품의 일부…작품 앞에 1초라도 관객이 서 있을 때 행복해”
[설치미술가 정필승] “관객도 작품의 일부…작품 앞에 1초라도 관객이 서 있을 때 행복해”
  • 장혜승
  • 승인 2020.05.27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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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겠구나. 마침내 별이 떠오르고, 그가 선택한 길이 맞았다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10년에 걸친 세월 동안 107명의 화가가 6만2450점의 유화로 나타낸 노작인 영화 '러빙 빈센트'는 고흐 생전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누구보다 뜨겁게 살다간 한 인간을 제목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빈센트는 무너졌던 거야. 누구든 그럴 수 있다. 삶은 강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해"라는 극중 대사처럼 설치미술가 정필승 작가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미술가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흔들린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영화 속 화구상의 말처럼 끝내 행복하게 마무리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정필승 작가를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설치미술이란 분야가 생소한데 일반 미술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회화와 조각 등 기존 순수미술에서 미술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오브제가 미술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설치미술은 다양한 표현의 예술영역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공간 해석의 의미를 더 갖고 있지만, 특정 형태를 갖춘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설치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단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재밌습니다. 필요에 의해 만들게 되는 것도, 그냥 이유 없이 무언가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것이 설치미술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전통 조각, 전통 회화 작업이 아닌 다양한 오브제 작업이 설치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각을 전공했는데요, 대학 시절 다양한 재료를 접하면서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름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미적 표현방법 - Yellow Flower’. 관객들이 캔버스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변화를 추구하는 미적 표현방법 - Yellow Flower’. 관객들이 캔버스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변화를 추구하는 미적 표현방법 - Yellow Flower’이라는 작품에서 잘게 나눠서 배열한 꽃잎 이미지의 캔버스를 관객이 원하는 대로 위치를 바꿔 걸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인데 관객의 참여가 가능해지면 작가 본인의 의도는 훼손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는지요.

“그동안 했던 작업들이 전시 후에는 소모되는 것들이 있었는데요, 처음부터 그러기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바세린으로 만든 조형물은 사람들이 만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고 초콜릿으로 만든 작품은 사람들이 먹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특별히 관객과의 소통에 의미를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미술가들마다 개인이 추구하는 작업 세계관이 다른데요, 제가 관객과의 소통에 의미를 두게 된 이유는 스스로 ‘내가 작품활동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관객이 없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 불필요한 행위이지 않을까 하는 거죠. 다른 전시를 보러 갔을 때 그 전시장에 10분 이상 있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관객들이 어떤 무언가에 의해서 내 작품 앞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시작입니다. 제 작품이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데 관객이 1초도 서 있게 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작가로서 허무하다고 느끼면서 관객의 참여, 체험 등을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작업하시면서 힘드신 점은요.

“저뿐만 아니라 미술가들 대부분의 공통점일 텐데요.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경제적인 활동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되고, 자주 회의를 느낍니다.   사실 누가 시켜서 하게 된 일도 아닌데, 스스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귤이랑 미술창고'.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귤이랑 미술창고'.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그래서 제주도에 아트샵 ‘귤이랑 미술창고’를 여신 건가요.

“네. 원래 서울 살다 일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왔다가 살게 된 지 3년 정도 됐는데요. 우연히 귤 농장에 있는 창고를 보고, 제주에서 아트샵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고를 얻게 되었습니다. 수익이 많이 날 거라고 기대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 저를 비롯한 작가들의 행위에서 경제적인 대가가 같이 왔으면 좋겠단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작품을 수집하면 공예작가님들이 상품으로 가공을 해주시고 그걸 판매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시나요.

”재밌어했으면 좋겠어요. 재미있다는 건 관심을 가진다는 거니까요. ‘이게 대단한 거야’라는 느낌까지 기대하진 않고 작품을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역할만 돼도 작업자로서 성공한 게 아닐까요.“

'귤이랑 미술창고'.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귤이랑 미술창고'. 사진=정필승 작가 제공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미술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며 기회되는 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는 동안 스스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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