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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돌아보는 2003년 학회활동
사건으로 돌아보는 2003년 학회활동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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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회장 시대 열려...국제진출도 한 특징

한 해의 끝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多事多難’하지 않은 해는 없다. 2003년 학회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였다.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학술단체 수가 2001년 1천6백72개에서 2003년 1천7백48개로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학회의 지형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신생학회 창립 소식에서부터 학회장 선출, 국제대회 유치 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소식들이 이어졌다. 사실 이것은 매년 학회들이 겪어나가는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몇몇 사건들은 있었다.

거칠게나마 지난 한해 학회 활동을 총괄해 보자면, 내부정리에 주력하면서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모색 시기로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계속되는 학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때문에 중소학회·지방학회의 경우에는 학회의 재정 및 학술지 유지 등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민한 반면, 중견학회들은 학회 내실화, 학술지의 SCI 등재 등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을 준비하면서 국제학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여성연구자들, 남성중심의 철옹성을 깨다

올해 유난히 눈에 띄는 외형적 변화는 여성 학회장의 등장이었다. 여성연구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중소학회에서 이미 여성 학회장이 선임됐기 때문에, ‘여성학회장 1호’라는 타이틀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어국문학회의 이혜순 회장(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과 한국언론학회의 박명진 회장(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경우는 다분히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복규 계명대 교수(행정학회)도 한국정부학회의 첫 번째 여성학회장이 됐다. 국어국문학회에서는 창립 51년만에, 한국언론학회에서는 창립 30년만에, 한국정부학회에서는 창립 36년만에 처음으로 여성학회장이 등장한 것. 文史哲 분야의 대표학회에서 여성학회장이 선임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학계의 남성중심주의적 문화가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리더십 등 여성적 가치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사회에서 부는 우먼파워와 함께 학계에서도 여성 연구자들의 성장이 출발선상에 섰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한편 지난 2002년을 기점으로 50주년을 맞은 학회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 움직임은 올해까지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국어국문학회, 역사학회, 한국물리학회, 한국경제학회 등이, 올해는 대한국제법학회(회장 김영구 한국해양대 교수), 한국교육학회(회장 박도순 고려대 교수), 한국정치학회(회장 신명순 연세대 교수), 한국철학회(회장 엄정식 서강대 교수) 등이 반세기 전환의 방점을 찍었다. 대체로 주요 학문의 모학회들이었으며, 이로써 우리 학문의 고유성에 대한 질문이 가능해졌다. 

학회 50년, 반세기의 전환점이 시사하는 것

올해 50주년을 맞은 학회들이 제시한 주제는 ‘한국과 국제법 50년’, ‘21세기 교육의 역할‘, ‘한국정치학 50년’, ‘철학과 인접학문과의 대화’ 등. 근대적 학회가 등장한지 50년이 지났다는 것은 이제 우리 학회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50주년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회고와 반성’에는, 학계가 자생적 이론을 엮어내지 못한 것과 학문후속세대의 교육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김없이 지적됐다. 학회의 외적 성장에 비해 학문적 토대 구축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실증적인 분석을 토대로 한 대안 모색이나, 교육 개혁 등에 관해서는 이렇다할 해결책 없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한편 학문과 학자 배출의 자생성 논의는 학술단체협의회의 연합심포지엄 ‘우리 학문 속의 미국’으로 이어졌으며, 내년에 또 한번 논의의 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학회가 국제학계로 활동영역을 옮겨가는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듯 하다. 올해의 성과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철학회가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를 유치하기로 한 것. 1900년 파리 창립대회 이후 세계 1백50개국의 철학자들이 5년마다 모이는 이번 행사는 세계 최대의 학술행사 중 하나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다. 

내실화 통해 세계무대 진출 노리기도

한국여성학회도 아시아에서 최초로 2005년 제9회 세계여성학대회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1981년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에서 처음 개최한 이후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전세계의 여성학자, 페미니스트 운동가 등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행사. 이 대회는 ‘경계를 넘어서: 동-서, 남-북’을 주제로 개최될 예정인데 민족내부의 갈등 해결에서부터, 넓게는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동서양의 ‘만남’과 가치 창출에 전세계가 주목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지난 11월 임정빈 서울대 교수(생물학)가 ‘아태 국제분자생물학네트워크’의 차기회장으로, 이충원 경북대 교수(기계공학)도 국제액체미립화학회 차기회장으로 선임된 것 역시 우리 학회의 국제무대 진출의 긍정적인 일면으로 기억할 수 있다. 국내연구자가 국제학회의 회장으로 선발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인데, 국제학술계에서 발언권이 높아지면 여러모로 활동하기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도 한국물리학회, 대한화학회 등의 주요학회들은 국내학술지의 SCI 등재 및 인용지수 높이기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한국정치학회에서는 예산의 학회비 비중을 높여 학문적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학회의 국제화와 내실화 논의가 가시화 됐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어떤 학회들이 새로 생겼을까

언론, 정치분야 강세...현실문제 해결 적극모색

어떤 학회들이 창립됐는가는 학계의 지형도를 읽는 바로미터다. 올해 학회 창립 풍경의 가장 큰 특징은 언론과 정치에 관련된 집단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회장 정기현 한신대 광고홍보학과)와 선거학회(회장 어수영 이화여대 교수), 한국정치평론연구회(회장 김재홍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의 발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1993년부터 활동한 ‘여성커뮤니케이션연구회’에서 학회로 탈바꿈하면서 “여성의 시각으로 미디어와 언론을 조망할 것”을, 선거학회는 “급변하는 정치적 환경에 맞는 선거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을, 정치평론연구회는 “언론의 정치 칼럼과 시사논평, 사설 등을 연구·비평하면서 거름망의 역할을 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영상과 문화도 끊이지 않는 관심의 대상이다. 미디어문화학회(회장 차봉희 한신대 독문학과 교수)는 대중, 다중매체 시대에 미디어를 통해 나타난 문학과 미학, 예술 등의 현상을 연구하면서, 문자 중심의 인문학 연구를 뛰어넘겠다는 시도로 등장했다. 역시 ‘문학과 미디어’라는 소모임에서부터 출발했으며,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기존 학회가 소화해내지 못하는 영역 연구를 위한 학회들도 출현했다.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한 주거환경 악화 방지와 인간다운 주거생활의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한국주거환경학회(회장 강원대 문영기 부동산학과 교수)나,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독성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나선 대한임상독성학회(회장 민성일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의 발족이 그런 경우다.

예체능 분야에서는 한국영화사 연구를 두텁게 하겠다는 한국영화사학회(회장 김수남 청주대 교수)와 미술창작과 해석에 필요한 제반 이론 및 다양한 미술 현장 활동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미술이론학회(회장 정영목 서울대 교수), 광주권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미술사학회(회장 박정기 조선대 교수)의 발족이 눈에 띈다. 실기 중심에서 이론의 보완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학술논문을 발표할 공간이 요청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올해 창립된 학회에는 한국미국문학회(회장 최용규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 한국로봇공학회(회장 변증남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이 있다. 올해 깃발을 올린 이들 학회가 어떤 모습으로 학계에 자기 색깔을 드러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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