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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시각 : 이병창 교수의 글을 읽고
제3자의 시각 : 이병창 교수의 글을 읽고
  • 신응철 전남대
  • 승인 2003.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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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 사이에서

신응철 / 전남대·철학

이 글은 논리적 주장이나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지난 월요일 새벽, 서울에도 첫 눈이 내렸다. 연애시절의 야릇한 추억과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된 듯, 나는 그저 기뻤다. 다섯 살 아들 녀석도 연신 들떠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라앉질 않았다. 출근길은 불편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듣게 되는 라디오 방송, 그 날도 체험하게 됐다.

그런데 스치듯 들리는 방송 내용 가운데, 첫 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기쁨의 선물로, 젊은이들은 낭만의 대상, 추억의 제공거리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불편의 대상, 염려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첫눈은 즐거움 한켠에 불편함을, 설레임 한켠에 염려를 동반한 이상야릇한 그 무엇이었다.

첫눈의 설레임 혹은 염려

이제 기자의 요청대로 이병창 교수의 글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평범한 자연인, 그러면서도 내 자신이 학술진흥재단의 수혜자, 정확히 말하면 학술연구교수의 입장에서 받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사적 관계로써 이병창 교수를 전혀 모른다. 다만 여러 글들을 통해서 그분을 만났을 뿐이다.

 이 교수가 제기하신 '학문적 권력 해체'와 '학문후속세대의 노예화'라는 두 글을 읽으면서, 아니 읽어가는 동안 난감해졌다. 이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자니, 적어도 학진의 수혜자인 나 같은 사람은 어느덧 학진적 학자, 영혼의 굴종자, 주류학회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처했다. 이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신이 학진의 입장에 그대로 선다는 것은 물론 아님을 밝혀둔다. 적어도 나는 이 교수의 두 편의 글을 통해서 그 분의 판단과 지적이 좀 과장될 수 있고, 따라서 왜곡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이다.

이제 나의 생각을 말해 볼까 한다. 나는 학진의 시스템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지는 잘 모를뿐더러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사실 그 문제엔 별 관심도 없다. 다만, 학진이 학문후속세대들을 향해서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학술지원사업과 그 취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찬성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적어도 박사학위 취득 후, 전임이 되지 못한 수많은 신진연구자들에게 일정한 기간, 특정 주제를 가지고 연구에 전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예컨대, 학술연구교수, 선도자연구, 신진연구인력, 기초학문육성과 같은 사업은 연구주체 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술연구교수 사업에 국한해서 본다면, 3년 동안 진행할 모든 연구주제와 연구방향은 연구자 본인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결정에 달려있다. 비록 한정된 기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연구 관심 분야에 대해 전력을 다함으로써, 양질의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러한 현상들은 자연스레 학문의 발전에도 분명 일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비주류전공, 경계를 넘는 주제, 참신한 주제는 주요학회지에서 홀대받고 있고, 이러한 권력화된 주류학회와 학진이 공모해 학진 연구비 선정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결과 학문적 권력체제를 만들어버렸고, 그런 의미에서 학진은 학술진흥재단이 아니라 학술방해재단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만일 이 교수의 주장대로 정말 그렇다면 절망스럽다. 그런데 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희망을 확신하고 싶다.

적어도 나 자신이 진행 중인 연구 주제인 '문화철학과 문화비평의 상관성 연구'를 볼 때, 나의 연구는 철저히 비주류전공이요, 경계를 넘는 주제요, 학제간의 주제인데, 그래도 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만난 주위의 많은 학진의 수혜자들은 나와 비슷한 경우들이었다.

그분들은 한결 같이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신진 학자들이었다. 본인들이 영혼의 굴종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학진의 지원 덕분에 더욱 자신의 연구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감사함을 아는 그런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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