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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文解力’ 불평등 구조
대학정론-‘文解力’ 불평등 구조
  • 문용린 논설위원
  • 승인 2003.12.0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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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과거와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래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에서는 “그레이트 북스” 운동이 대학가에 잘 자리 잡고 있다. 시카고 대학의 총장이었던 허친스와 컬럼비아 대학의 애들러 교수는 고전읽기를 대학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긴다.

미국 대학에서의 책읽기에 대한 강조는 그간 인문학자들의 强辯처럼 여겨져 온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세계는 요란하게 몰아쳐 변해 가는데 한가롭게 고전이나 읽고 있어서야 되겠는가하는 질타의 목소리도 거셌다. 인문학적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세력과 실용적 직업성을 강조하는 세력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긴장이 미국대학의 정체성 위기를 가속화 시켜 교육의 질을 하락 시키게 될 것으로 우려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났다. 교양교육과 직업적 전문성 사이의 대타협이 일어난 것이다. 학부에서는 교양교육을 중심축으로 하고 대학원에서는 철저한 직업적 전문성을 중심축으로 하는 고등교육의 틀이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애들러와 허친스는 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의 핵심으로 세 가지를 내세운다. 첫째는 여가시간을 자아실현의 일환으로 사용할 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둘째는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는 민주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독서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 속에는 책 읽기 능력이 곧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른바 문해력(literacy)을 개인과 사회진보의 인프라로 보는 것이다.

이런 50여 년 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져서, 오늘날에는 문해력이 발전 잠재력의 지표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국민들의 문해력의 수준(문맹수준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이 지표를 수량화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OECD에서는 소득불평등이 한 나라의 경제상황의 이해에 요긴한 것으로 판단한다. 동시에 문해력(literacy)의 불평등 구조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민들 간의 소득 불평등의 해소도 중요하지만, 더 근원적인 것은 국민들의 문해력(독해력) 불평등 해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해능력의 차이가 곧 개인의 성공과 발전의 차이를 빚어낸다고 그들은 보고 있다.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에서 문해력 불평등이 낮다. 경제발전이 쳐진 나라일수록 문해력 불평등이 크다. 국민들의 문해력 즉 책읽기 수준은 경제 발전과 거의 직결되는 고리인 것 같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문해력 불평등 계수와 나란히 OECD 통계표에 함께 제시된 게 교육학자로서 놀랍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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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2004-03-13 20:46:13
문용린 교수의 거의 모든 글은 "대학을 상업 경제의 논리로 전락시켜야 한다, 기존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제 더 이상 상아탑은 쓸모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글을 읽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미국 중심주의에 입각한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