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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원] 분석 : 실패한 팽창주의 대학원 정책
[한국의 대학원] 분석 : 실패한 팽창주의 대학원 정책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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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소화불량'과 '영양결핍'의 현실
고단한 학문의 외길을 걷고 있는 학문후속세대들이 제 몫 찾기에 나선 것일까.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모색’팀이 던진 문제제기가 대학가의 주목을 끌고 있다. ‘모색’은 지난 1월 창간호를 통해 ‘새로운 학문을 위한 권리선언’으로 시작으로 그동안 가슴 한 켠에 쌓아두었던 학문후속세대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한국의 대학원 사회는 죽었다”며 교수와 학문후속세대간의 구조화된 병폐를 하나씩 들춰냈다. 교수사회에서 후학에 대한 지원과 배려로서 ‘학문후속세대론’이 거론된 적은 있어도 대학원생들이 제 권리 찾기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고 보면 이를 보는 교수사회의 시선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모색’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아무리 사제지간이라지만 서로 道를 거스를 정도로 대학원이 몰염치한 사회는 아니다”는 비판론에 가깝고, 다른 한쪽은 “곪을 대로 곪아버린 대학원의 문제가 터져 학문의 正道를 걸어야 할 그들이 일어난 것”이라는 “이제 뭔가를 시작할 때”는 긍정론에 기운다.

우리에게 대학원 정책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내부 논의에서 에둘러 보면 그들이 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지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는 대학원의 양적 팽창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정부가 대학원 정책이란 것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이전까지 대학원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며, 학부의 곁다리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대학원중심대학’이란 슬로건이 나타나고, BK21사업을 통해 ‘연구중심대학’론으로 발전하면서 교육부 정책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교육부가 조직내에 ‘대학원지원과’를 만든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학원의 양적 팽창은 각종 통계를 통해 쉽게 확인된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90년 3백3개 대학원에 재적학생 8만7천1백63명이던 양적 규모는, 95년 4백27개 대학원 11만3천8백36명으로 80% 가까이 커졌다. 2000년에는 8백29개 대학원에 재학생수만도 22만9천4백37명에 이르게 됐다. 불과 10년만에 그 규모가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2000년 현재 석·박사 과정을 합쳐 대학원의 입학정원은 총 8만8천2백54명 웬만한 대학의 학부 입학정원과 비슷한 1천명 이상의 학생을 석사과정에서 선발하는 대학만도 21개 대학에 이른다.
결국 과거 10년 동안 대학원의 성장은 학부가 해방이후 40년간 팽창한 규모와 속도를 뛰어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해 배출되는 박사학위자도 6천명을 넘는다. 90년, 2천4백81명에 머물던 박사학위자 수는 95년 4천1백7명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6천명을 넘어, 6천5백58명을 배출했다. 90년 후반부터 대학원의 양적 규모가 이렇듯 비대해진 것은 앞뒤를 생각하지 않은 정부의 정책적 실패와 대학의 무분별한 세 불리기 때문이다. 정원을 엄격히 관리해 교육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보다 눈앞의 이익에 몰두해 후속대책 없이 양만 늘려온 것이다. 이는 곧 대학원 정원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결국 70년대 이후에 나타난 대학의 그릇된 양적 팽창이 90년대 이후 대학원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양적 팽창에 따라 대학원 교육의 질도 부실해 수밖에 없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대학원만을 위한 전용시설을 갖추거나, 전임교수를 확보하고 있는 대학은 국제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10개 대학에 설치된 국제대학원을 제외하곤 거의 볼 수 없다. BK21사업이 시행된 후 1~2년 단위의 연구·계약교수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도 임시 방편이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교수들의 우려는 심각해만 간다. 김흥규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학문적 역량과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학들 마저 대학원을 개설하는 것이 문제다”며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대학원 개설을 막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양적 팽창에 휩쓸리면서 대학원 교육은 ‘모색’팀의 지적한 것 같이 “직업 ‘교육’도 아닌 학문 ‘연구’도 아닌 어중간한 방식”으로 전개될 개연성을 품고있다. 그 속에서 대학원을 바라보는 교수와 학생과 정책당국의 입장은 각각의 불만을 토로하며 다양한 프리즘을 나타낸다. 교수는 주로 학생의 자질부족과 정책의 실패를 꼬집는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대학원생들의 학문적 동기가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학원 교육의 질도 낮아지기 마련”이라고 밝힌다. 학생은 주로 모순적인 내부구조에 초점을 둔다. “대학은 교육의 질을 생각않고 잇속을 차리기 위해 정원 늘리기에 급급하고, 교수는 대학원생을 연구자가 아니라 심부름꾼 정도로 취급한다”는 식이다. 갈길 바쁜 정책당국은 ‘경쟁력 강화’에 매몰된다. 교육부 엄상현 학술학사제도과장은 “대학은 곧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이를 위해선 대학원의 연구력 강화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학원정책은 ‘학문정책’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볼 때 오늘의 대학원은 양적으로 ‘소화불량’에, 질적으로 ‘영양부족’을, 내부적으로 ‘소통불능’의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학문’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퇴보하거나 정체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원의 중심은 연구라는 점에서 그 정책 또한 학부의 교육정책과는 구별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경쟁력 강화에 중심을 둔 인력정책으로 쏠리고 있다.
올바른 대학원 정책은 ‘학문정책’이어야 한다는 교수들의 지적은 정책당국이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일관성 있는 학문정책의 수립과 실행으로 대학원 육성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질 높은 연구결과를 기대하고, 수준높은 교육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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