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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노린다
[대학정론]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노린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5.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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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첫 환자 발생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태가 넉 달이 다 되어간다.

작년 말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면서 중국에서 확산된다는 이야기가 외신을 통해 전해졌을 때만해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당시 중국의 폭발적인 증가 상황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확진자수가 생각보다 크게 늘지 않은 점도 우리 스스로가 경계를 게을리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거의 한달 만인 2월 18일, 신천지발 유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상황은 공포와 우려로 바뀌었다. 신천지 사태는 우리에게 “바이러스는 방심을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것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곳을 주도면밀하게 파고든다는 점도 일깨워 주었다. 우리나라 전체 확진자(1만 1000여 명) 중 약 47%인 5212명이 신천지 관련일 정도였다.

뼈아픈 상처지만, 신천지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코로나 대응 능력은 크게 발전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른바 ‘3T’ 측면에서의 성공이 그것이다.

신천지로 인한 환자 급증은 보건당국과 민간기업이 그간 준비한 진단(test) 능력을 제대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고, 확진자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역학조사(trace) 역시 정보통신 유관부처의 노력 덕에 이제는 한 시간도 안 돼 관련 동선을 파악할 정도다.

또한 치료(treat) 분야도 의료진의 헌신과 기술 덕에 사망률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2.4%)에 머물고 있다.

아울러 신천지 사태는 의학적 방역과 함께 방역 주체인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한 손씻기,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사회적 방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었다.

실제로 의학적·사회학적 노력의 결과물은 확진자수 급감으로 나타났고, 전세계 팬데믹 상황임에도 4·15 총선을 가능하게 했으며 황금연휴(4.3~5.5)를 맞이해 조심스러운 나들이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우리에게 여유를 준 것이 아니었다. 이 바이러스는 오히려 우리에게 방심할 시간을 준 것이었고, 우리 사회에서 파고들고 있는 ‘약한 고리’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결국 이태원 클럽이라는 틈을 찾아 또 다시 우리에게 사회 활동 제한은 물론, 등교가 연기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약한 고리’는 무엇일까?

19세기 독일의 화학자이자 비료의 아버지로 불린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최소율 결정의 법칙’(law of the minimum)에 따르면 식물이 자라는 데 대부분 필수 영양분이 충분하더라도 하나가 부족하면 충분한 영양분의 양과 관계없이 특정 부족 영양분에 따라 식물 성장이 억제된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쇠사슬로 치면, 대부분의 연결고리가 강하더라도 특정 고리가 약하면 그 사슬 전체는 ‘사슬의 약한 고리(chain's weakest link)’ 때문에 끊어질 수밖에 없고, 사슬 전체가 무용지물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약한 고리의 중요성은 다른 학자에 의해 ‘리비히의 배럴’(Liebig's barrel)로 재탄생했다.

배럴은 여러 개의 나무판을 가로방향으로 견고하게 맞댄 뒤 이를 철판 띠로 조여 맥주, 와인, 화약 등을 보관하기 위해 쓰이는데, 모든 나무판이 다 제 역할을 하더라도 그중 하나가 짧거나 문제가 있다면 통 자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된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이런 싸움은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라는 인류의 아군을 만날 때까지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 국민과 경제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는 스스로가 바이러스보다 먼저 약한 고리를 찾아내 손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잔인한 바이러스는 약한 고리에 숨어 힘을 비축하면서 2차 대유행을 모색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는 어디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여러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계층이나 약자가 대부분이다.

이번 연휴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 발생으로 주목 받는 성소수자가 한 예이고, 돈을 벌기 위해 타국만리에서 들어온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 가난이라는 이유 탓에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빈곤층, 그리고 노숙인 등 재난약자가 약한 고리이다. 장소로 치면, 화재 발생시 가장 취약한 곳이다.

이들은 사회적 차별과 혐오 등으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기 어려운데다, 경제적 이유 혹은 정보 및 행정 접근성 부족 때문에 코로나19가 한 번 침투하면 ‘집단 보균 상태’를 오랜 기간 유지할 지도 모를 대상이다.

박기수 고려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
박기수 고려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

 

결국 2차 유행 폭발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이러한 감춰진 곳에 대해 ‘적극적’이고 ‘배려적’ 방역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간의 방역 성과는 사실상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외 없는 방역과 공조가 필수적이다. 사회 집단의 95%가 방역이 잘 되었더라도, ‘불편하고 약하고 소외되고 감춰진’ 나머지 5%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전할 때까진 아무도 안전하지 못하다(No one is safe until everyone is safe)”라는 말처럼, 2차 유행을 걱정하는 요즘 우리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가 꼭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박기수 고려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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