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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제국의 탄생
페스트 제국의 탄생
  • 조재근
  • 승인 2020.05.19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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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제국의 탄생
페스트제국의 탄생

 

신규환 지음 | 역사공간|336쪽

이 책은 19-20세기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제3차 페스트 팬데믹(세계적인 유행)을 계기로 서구열강과 동아시아 각국이 의학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의과학 지식을 어떻게 구축하고, 그 지식이 국가건설과 방역체계의 수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페스트는 지난 2000년 동안 세 차례의 팬데믹으로 등장했다. 제1차 페스트 팬데믹은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 불리던 것으로 비잔틴 제국을 휩쓸었던 질병이었고, 제2차 페스트 팬데믹은 14세기 중반 이래 300년 동안 유럽을 강타하여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켰다. 이 때의 페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대 서양인들의 정신세계에 뿌리 깊이 각인되어 전염병(plague)이라고 하면 페스트(pest)와 동일시할 정도가 되었다. 제3차 페스트 팬데믹은 19세기 중반 남중국에서 등장했고, 20세기 초 북만주에서 유행했는데, 20세기 전후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페스트는 북미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3차 페스트 팬데믹과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페스트의 실체에 대해서는 해외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20세기 동안 페스트의 주요활동 무대는 동아시아였다. 중국 윈난(雲南)지역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홍콩을 거쳐 대만, 일본, 만주, 러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고, 태평양 건너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1894년 6월 홍콩에서 선페스트균이 처음 발견 및 분리되면서 그 실체가 확인되었지만,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는 홍콩과 광둥(廣東)에서만 수만 명에 이를 정도로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예방과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이었다. 더욱이 1910-1911년과 1920-1921년 두 차례에 걸친 만주 페스트는 폐페스트라는 새로운 형태의 페스트로 등장하여 최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페스트 방역대책의 수립과정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근대국가 건설에 나섰으며, 서구 열강은 페스트 의학지식의 정립을 통해 제국의학의 권위와 의학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고자 했다. 당시는 페스트에 관한 의과학 지식의 정립 여부가 제국이냐 식민지냐를 결정하는 단적인 지표로 작용할 수 있던 시기였다. 말하자면 당시 서구열강과 동아시아 각국은 페스트에 맞서 세균학에 기초한 제국의학을 건립하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서구열강과 동아시아 각국이 제국의학의 건립을 위해 혹은 제국의 팽창과 주권의 유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경주했는지, 19-20세기 최신의 의과학을 바탕으로 방역행정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를 검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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