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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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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재근
  • 승인 2020.05.19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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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올포트 지음 | 석기용 옮김 | 교양인 | 840쪽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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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왜 이토록 쉽게 편견에 물드는가?

“그 사람들은 너무 따로 놀아요. 돈에 집착하는 것도 보기가 좀 그래.” “그 동네에 가봤어요? 더럽고 위험해서 밤에 거리를 나다닐 수가 없다니까. 저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남의 나라에서 끼리끼리 뭉쳐 살면서 이기적으로 군다고 비난받는 ‘그들’, 허구이거나 부풀려진 부정적 이미지에 갇혀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그들’은 누구인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미국의 흑인, 일제강점기의 재일 조선인이 ‘그들’이었고, 지금 한국 사회에선 중국 동포, 난민, 성소수자, 여성이 ‘그들’의 자리에 있다.

인류 역사상 편견 없는 사회, 편견 없는 시대는 없었다. 타자에 대한 적개심은 인간의 본성인가?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The Nature of Prejudice)》에서 이 심리적 편향성의 문제를 개인의 성격 발달, ‘희생양 만들기’의 역사, 사회 규범, 종교, 경제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탐구했다. 오늘날 편견 문제를 다루는 모든 연구자는 올포트가 내린 편견의 정의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그가 쓴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편견》은 편견 연구의 출발점이자 건너뛸 수 없는 고전이다.

사회 규범을 따르는 동조자부터 타협의 여지가 없는 편견적 인간까지 편협함에도 차이가 있다. 편견적 인간은 흑백 논리로 판단한다. 모든 관계는 친구 아니면 적이고, 어떤 일을 하는 올바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예의범절과 형식적 도덕에 집착하고, 모호한 상황을 참지 못한다.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할 때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검증된 습관에 매달린다. 편견적 성격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탓하지만, 관용적 성격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먼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관용적 성격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존중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저자는 편견적 성격과 관용적 성격의 특징을 자세히 살피고, 부모의 영향과 교육, 사회적 관행 등 우리를 편견 혹은 관용으로 기울게 하는 다양한 원인을 확인한다.

개인의 변화가 먼저인가, 사회 구조의 변화가 먼저인가?
왜 많은 예의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이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낼까? 특정 종교, 특정 지역 출신 중에 편견이 심한 사람이 유독 많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합의’ 없이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면 정말 분열이 더 심해질까? 어째서 한 집단은 증오의 대상이 되고 다른 집단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에 상관없이 어울려 살면 편견이 사라질까? 집단 간 갈등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편견》이 시대를 뛰어넘어 고전의 지위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런 현실적인 고민과 실현 가능한 해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기 미국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편견 연구와 차별 시정 방안을 비교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 내용은 출간 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법과 정책 분야에서 실용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특히 올포트는 고용, 주거, 교육에서 차별을 제거하는 단호한 행정적 결정과 입법 조치가 편견을 줄이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입법이 곧 교육이 된다. 대중은 미리 전향자가 되지는 않는다. 기정사실이 그들을 바꾼다. 자신의 편견 때문에 반대하던 사람도 그 법이 양심에 부합하면 받아들인다.”

올포트는 이 책이 이론과 실천에서 모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 책은 흥미롭고 구체적인 사례와 명료한 설명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고 미국 시민권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흑백 인종 차별에 맞선 두 주요 인물 맬컴 엑스와 마틴 루서 킹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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