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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논문이 떠돈다"
"유령 논문이 떠돈다"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3.12.05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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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 왜곡된 학술지 등급 높이기 풍토 질타

한 대학교수가 학술지 등급 높이기와 학술논문 게재를 둘러싼 부당한 연줄대기 백태를 털어놔 파문이 예상된다. 


▲당대비평 2003년 겨울호 ©
계간지 ‘당대비평’에서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김두식 한동대 교수(법학부)는 이 잡지 2003년 겨울호 ‘초보 철밥통의 논문 데뷔 이야기’에서 인위적 학술지 등급 높이기와 학술논문 게재를 둘러싸고 부당한 연줄대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학술진흥재단이 시행하는 학술지 평가를 위해 인위적인 학술지 등급 높이기가 자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의 인용에 따르면, 모 법학 학술지의 경우 논문 게재 탈락률을 높이기 위해 논문을 실었던 교수들에게 가짜 논문 제목을 3배수 적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거론된 학술지의 경우 “원래 교수들 글을 탈락시키는 학술지가 아니었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싣거나, 급하게 논문을 게재해야 하면 먼저 실어주기도 하는” 학술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학술진흥재단의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허위 논문 제목을 만들어냈던 것.


김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모든 학술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이 이야기는 국내 학계에 키워준 스승도 이끌어 줄 선배도 갖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홀로 몸부림치고 있던 나로 하여금 모든 의욕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재임용을 위해 또 다른 법학 학술지에 사회보장법 분야 학술논문 게재를 신청했으나 인맥이 없어 논문을 게재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실무 법조인과 법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해당 학술지는 표면적으로는 논문을 공개 모집하면서도, 실제로는 편집위원의 소개로 논문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김두식 한동대 교수. 법학 ©
애초 해당 학술지는 “원고를 이메일로 송부하면 원고게재 2개월 전에 편집위원회 심사를 거쳐 게재한다”라고 공고를 냈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얼마 뒤 학술지 사무국 직원으로부터 “아는 편집위원으로부터 논문 게재를 부탁하는 게 수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듣고서도 논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던 김 교수는 결국 형법 논문이 많아 게재하기 힘들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고 밝혔다.

“동종교배가 생존수단으로 자리 잡은 게 우리 학술풍토”라고 비판한 김 교수의 '양심선언' 후폭풍이 예상된다.

당대비평의 동의를 얻어 김두식 교수의 글 전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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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철밥통’의 ‘논문’ 데뷔 이야기

김두식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수 노릇을 시작한지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교수직을 평생의 꿈으로 삼아온 대부분의 교수들과 달리, 저는 학교에 몸담기 전까지 교수를 꿈꿔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법조계 주변을 서성이며 20대를 보낸 뒤 어찌어찌하여 미제 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던 2000년 봄, 정말이지 한국에 돌아가 변호사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변호사 말고 달리 먹고 살 길도 없어 고민하던 와중에 실무 출신 법학 교수를 찾는다는 우리 학교의 구인 공고를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진 덕에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그야말로 ‘어쩌다’ 대학교수가 되고 나니 당장 밀어닥친 어려운 숙제가 논문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논문을 쓰는 게 문제였다기보다는, 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걸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글을 써서 보내면 학술지 편집위원회에서 알아서 논문을 심사한 후 ‘게재’, ‘게재 불가’, ‘수정 후 게재’의 통보서를 보낼 것이고, 그러면 그에 따라 글을 좀 손보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주로 형사법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주된 관심 분야인 인권, 사회보장법을 주제로 논문을 시작해야겠다는 대강의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국가인권위원회 설치가 한참 논란이 되던 시절이라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 입법 움직임이 인권법 그 자체보다 조직의 성격, 권한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첫 번째 논문을 쓰게 되었지요. 각주를 꼼꼼히 적어 넣은 분명한 ‘논문’이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입법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논문 게재를 미룰 수 없어, 급한 대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이라는 민변 회지에 글을 보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의 편집을 맡은 분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만, 동시에 이 글은 곧 국가인권위원회 입법운동을 주도하던 변호사님으로부터 저의 논문보다 더 두꺼운 치밀한 비판도 받게 됩니다. 비판을 받을 당시에는 “어쩌면 사람을 이렇게 난도질할 수가 있나?”하는 황당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호사님의 비판이 참 고마운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제 논문을 읽고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는 점, 그것도 한참 선배 변호사가 후배의 비판에 적극적인 반론을 폈다는 점, 피차간에 아무런 감정적 앙금이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건 결코 황당해할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그 변호사님을 만나 그 때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첫 논문치고는 기분 좋은 출발이었던 셈이지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은 ‘학술지’가 아니며 따라서 이 글이 저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비학술지’에 실린 이 글은 내용이야 어떻든 ‘논문’이 아닌 ‘잡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던 첫 번째 논문과는 달리, 저의 얼굴이 될만한 두 번째 글로 쓰게 된 것이 「누가 장애인인가 : 장애 모델과 장애의 개념」이라고 하는 사회보장법 분야의 논문이었습니다. 헌법, 민법, 형법 등 고시과목을 중심으로 한 학문분류에만 익숙한 우리 법학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생소한 주제일 수밖에 없었지요. 제대로 된 사회법 학회가 결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저는 이 논문을 도대체 어디에 실어야 할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실무 법조인들과 법학자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전통 있는 ‘학술지’ 하나를 알게 되었지요. 게재될 논문의 내용이 세분화된 학문분야에 따라 제한되는 대부분의 ‘학술지’들과는 달리, 여러 법학분야 논문들이 다 함께 게재하는 곳이라, 여기라면 제 논문도 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 등록도 하고 있던 저에게 때마다 배달이 되어 오던 책이라 익숙하기도 했고, 제일 뒤에 “기고를 원하시는 회원께서는 본원 사무국에 전화를 주신 후, 원고를 이메일로 송부해 주시면, 사무국에서는 원고게재 2개월 전에 편집위원회 심사를 거쳐 게재합니다”라고 적혀있어서 뭔가 제대로 된 편집위원회가 기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술지 제일 뒤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한 후 제 논문을 보냈지요. 그런데 얼마 후 저는 그 학술지를 발간하는 사무국으로부터 다시 전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교수님? 어느 편집위원님의 소개로 글을 보내신 건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편집위원은 무슨 편집위원이요? 저는 아는 편집위원이 없는데요. 그냥 그 학술지 뒤에 적힌 대로 논문을 보낸 것뿐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 분은 아주 곤란하다는 듯이 “저희는 학계 쪽 분들의 논문은 학계 쪽 편집위원께서 글을 모아 보내주시고, 실무 쪽 논문은 실무 쪽 편집위원께서 글을 모아 보내주시는 방법으로 논문을 모으고 있습니다. 혹시 아는 편집위원이 있으시면 그 쪽으로 논문게재를 부탁하시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좋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직접 논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편집위원회는 형식일 뿐이고, 편집위원들이 각자 주변 사람들의 글을 소개하면 실리도록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저는 “아는 편집위원 없으니, 사무국에서 알아서 관련 분야 분께 글을 보내 평가를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한달쯤이나 지났을까요? 그 분께서 다시 전화를 하셨더군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지금 형법(!) 논문들이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교수님의 형법 논문은 게재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웬 형법? 보나마나 제 약력을 통해 형사법 교수인 것만 확인하고는 심사도 없이 그냥 거절을 통보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거기에 대고 “그게 사실은 사회보장법 논문인데요”라고까지 이야기하면, 제 꼴이 정말 우스워질 것 같아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학술지’라고 하는 것의 벽이 참 높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간하는 《인권과 정의》라는 협회지였습니다. 거기에도 매달 논문들이 실리고 있는 것을 떠올린 것이었지요. 직전에 겪은 망신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편집위원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역시 편집위원 중에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민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 한 분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분이라면 최소한 공정한 처리는 해주겠지”하는 생각으로 어렵게 전화기를 손에 들었지요. 간략히 자기소개를 하고 “《인권과 정의》에 논문을 게재하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논문을 편집위원님께 보내드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 분은 매우 의아하다는 듯이 “논문은 그냥 대한변협으로 보내주시면 우리 편집위원회에서 심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 전화 거실 필요는 없는데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쑥스럽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실력도 없는 놈이 논문 게재를 청탁하고자 전화를 건 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허허. 결국 그 논문은 《인권과 정의》에 무사히 실리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자체보다 실릴 때까지의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글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허접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워낙 그 분야의 연구가 부족한 가운데 처음 나온 글이라 이후에 장애인 운동가들과 관련 정부부처에서 많이 활용되는 자료가 되었지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과 기타 ‘잡지’(여기서의 잡지는 학술지를 제외한 모든 매체를 의미합니다)들에 실리는 ‘잡문’이 명확히 구분되는 현실 속에서 ‘학술지’에 대한 저의 존경심이 날로 높아가던 그 즈음, 저는 잘 나가는 어느 학자 한 분으로부터 매우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분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갑자기 바빠졌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바쁜 일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요즘 제가 하는 일 같은 걸로 바빠지고 싶지는 않아요. 《○○○○○》라고 유명한 학술지 들어봤지요? 요즘 학술진흥재단에서 한참 학술지들을 평가해서 등급 매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거기서 높은 등급을 받으려다 보니, 이전에 《○○○○○》에 글을 실었던 분들한테 모두 자기가 게재한 글의 3배수되는 분량으로 논문 제목을 적어내라는 부탁이 왔답니다. 그게 원래 교수들 글을 탈락시키거나 하는 그런 학술지가 아니었거든요. 그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다 실어주고, 어떤 교수가 승진을 위해 급하게 논문을 게재해야 하면 좀 먼저 실어주기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유지되어왔지요. 그런데도 높은 등급을 받으려면 탈락률을 높여야 하고 그러다 보니, 예전에 이렇게 많이 탈락시켰다는 근거가 필요하게 된 겁니다. 사실은 쓰지도 않은 엉터리 논문 제목들을 만들어 내려고 하니 쉽지가 않습니다.”

결국 보다 권위 있는 학술지가 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탈락률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걸 위해 역시 있지도 않은 논문 제목들만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엉터리 논문 제목들을 3배수로 적어내게 되면 그 ‘학술지’는 탈락률이 무려 70퍼센트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술지’가 학술진흥재단의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물론 모든 학술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국내 학계에 ‘키워준’ 스승도 ‘이끌어 줄’ 선배도 갖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홀로 몸부림치고 있던 저로 하여금 모든 의욕을 잃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지방 소재의 이름 없는 대학에서 올라온 이름 없는 학자의 경우 그 이름조차 물어주지 않고 초면에 “어떻게 그런 시골에서 버티실 수 있나요?” 같은 질문으로 무시하는 학자들이 모인 학회, 겉으로는 온갖 고상을 다 떨면서 입만 열면 “서울 ○○대학에 자리가 났데”, “○○ 대학에 ○○○ 선배가 들어간 것은 △△대학파와 ××대학파의 싸움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거래” 하는 식의 학계 야담만 오가는 뒤풀이. 동문수학한 학자들 사이의 뜨거운 우정과 동종교배만이 있는 그 곳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끝내 저는 진짜 좋은 ‘학술지’에 명함조차 내밀어보지 못했습니다. 세계적인 법학 논문집(Law Review)들에 실린 개성 있는 저자들의 논문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이게 과연 논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웃기는 질문을 던져본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건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그 이후 저는 몇 편의 ‘논문’을 더 쓰고 기독교 평화주의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책도 한 권 써냄으로써 그럭저럭 학자로서의 ‘생존(재임용 및 승진)’에는 성공하게 됩니다. 《인권과 정의》가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학술지로 무슨 등급을 받게 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그럭저럭 ‘당분간 생존’ 판정을 받고나서, 올해 저는 한 편의 ‘논문’도 쓰지 못했습니다. 꽤 긴 기간 신문에 칼럼을 썼고, 학술지가 아닌 것이 분명한 ‘잡지’ 《당대비평》이 출간한 『탈영자들의 기념비』에 ‘논문’ 아닌 ‘잡문’을 하나 실었으며, 책을 한 권 써보겠다고 여름부터 골머리를 앓은 것이 올해 제가 해낸 일의 전부입니다. 글 솜씨도 없는 놈이 신문 칼럼을 쓴다고 9개월 동안 머리를 쥐어짜낸 뒤 ‘다시는 이런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주변의 글 부탁을 모두 거절하며 버텨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못하니 속이 답답해지더군요. 결국 이번 글을 통해 저는 다시 ‘잡문’ 쓰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다음 번 ‘생존 판정’을 받는데 상당한 위험이 있을 수 있으므로, 내년에는 반드시 ‘논문’을 몇 편 써내야 하겠지만 올해는 그냥 이렇게 보내고 싶습니다. 어차피 세계적인 ‘대학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제가, 얼치기 학자 노릇으로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대학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잡문’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중단하지 말자는 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어쨌거나 변두리 변호사 노릇보다는 변두리 학자 노릇이 훨씬 더 행복하니, 타고나기를 백수체질로 태어난 모양입니다.

‘논문’ 아닌 ‘잡문’들을 모으는 ‘잡지’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나서 벌써 세 번째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학술지’와 ‘비학술지’가 분명히 구분되고, ‘논문’과 ‘잡문’이 칼처럼 나누어지는 이 나라에서 이런 식의 계간지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매체를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은 좋은 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번 호에도 훌륭한 필자들께서 뚜렷한 주관과 탁월한 식견을 담은 원고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잘 쓰인 글 한 편을 남들보다 먼저 읽을 수 있는 것은 편집위원으로서 제가 누리는 일종의 특권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정진웅(덕성여대), 이상길(성균관대)두 분 선생님께서 이 특권에 동참하기로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객원편집위원 체계가 해외편집위원으로 바뀜에 따라 서동진(문화평론가), 송경아(소설가) 두 분과 새로 갈홍(스탠포드 한국학 연구소) 선생님도 해외편집위원으로 함께 자리하시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서로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다음 호 기획에 지혜를 모으는 《당대비평》 편집위원회 모습은 동종교배가 생존수단으로 자리 잡은 우리 학술 풍토에서 그나마 희망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우리 시대의 골칫거리 인 어느 신문에 대한 일부 편집위원들과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 함께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선보이는 《당대비평》 겨울호가 우리들 편집위원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즐거운 대화의 장을 제공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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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시네요 2003-12-14 23:36:18
좋은 기사였고, 또한 인용된 글 역시 좋았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이라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는 기사였습니다.
불씨처럼 타오를지도, 언제 꺼질지도 모를 상황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살아가리라 마음 먹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 같은 분도 있구나, 하는 위안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당대비평을 구독해야겠군요.

한국대학 2003-12-06 11:37:25
한국의 상황은 인맥이 철저히 그리고 복종하는자만이 생존할수있는 세상이지요(대체로)...

교단을 떠나야 할 사람들은 측근들을 심어놓고 뒷짐지고 잘 지내고 있지요...이들은 정년을 채우기전까지는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1주에 강의 3시간도 연구 1시간 안해도 정년보장되니까요...

논문싣는것은 국내에서는 인맥만 있으면 투고후 15일만에 출간될수도 있습니다(편집위원만 잘 알면요), 설상 그것이 학술등재논문집이라하더라도...만약 개인적인 감정이 있으면(바른소리한경우), 심사기간 늧추면서 reject를 시키지요(내용과는 무관하지요)

정말 인정적인곳, 그러나 정말 세계화시대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한국의 더러운 기득권층들 ...

정말로 이상한 대학사회가 개선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으로부터...

p.s. 이글은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교수님들을 향한글이 절대 아님을 지적합니다.

김종명 2003-12-05 21:24:53
학술논문에 대한 동종교배식 심사 풍토는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히 관행으로 처리될 것이 아니라, 학계의 사기행위 내지는 범죄행위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