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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윤구병의 존재론 강의』(윤구병 지음, 보리 펴냄, 244쪽)
논쟁서평 : 『윤구병의 존재론 강의』(윤구병 지음, 보리 펴냄, 244쪽)
  • 김상봉 서양철학
  • 승인 2003.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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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있음과 없음'이 문제인가...우주론적 질문의 의아함

김상봉 / 서양철학자, 문예아카데미원장

윤구병 선생의 책, ‘윤구병의 존재론 강의: 있음과 없음’은 저자가 1993년 ‘시대와 철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1997년 중단한 ‘존재론 강의’에 기초한 책이다. 나는 저자가 어떤 분인지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책머리에’란 제목의 머리말을 보면 ‘변산 농부 윤구병’이라고 씌어져 있는데, 뒤에 붙은 약력을 보니 어쩌면 이리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들고, 나처럼 특별한 기복 없이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선생의 그런 삶의 궤적만으로도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낄 정도다.
물론 이 책의 가치가 선생의 삶에 기인하는 건 아니다. 이 책에 대한 총괄적 평가는 결국 책을 직접 읽는 독자들의 몫이지만, 내 편에서 보자면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 (내가 아는 한) 이 책이 국내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역사를 존재론적으로 서술한 첫 번째 책이라는 데 있다.
흔히 중세 철학의 근본문제가 ‘신’이었다면, 근대 철학의 근본문제는 ‘나’ 곧 ‘자아’였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고대 철학의 근본문제는 ‘존재’ 곧 ‘있음’과 ‘없음’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그리스 철학자들이 아르케와 이데아 또는 우시아와 하나(이른바 一者)를 말했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 모든 논의들의 뿌리에 있음과 없음에 대한 근본 관심이 놓여 있다는 건 제대로 이해되거나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다양한 철학이론들이 근본적으로 있음과 없음이라는 근본문제를 두고 벌인 거인적 싸움이었다는 걸 일관되게 보여주려 하는데, 이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사를 존재론적으로 서술

그러나 여기서 있음과 없음의 문제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제는 이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과연 존재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걸 명확히 정식화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이 책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을 방해한다. 문제는 있음과 없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 문제란 말인가.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는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상 위에 책이 있다. 술병에 술이 없다. 이를 두고 못 알아들을 말이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있음과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 개념이어서 그것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있음과 없음에 대해 질문한다면, 철학이 지시하고 있는 문제사태가 과연 무엇인지가 먼저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저자는 존재물음이 지시하는 문제사태가 무엇인지를 명시하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간다.

다만 산발적으로 몇 군데 선생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문제는 그런 것들이 존재론의 문제사태를 온전히 지시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철학의 역사에서 없는 것을 없음 바로 그것으로 놓고 벌여왔던 많은 논쟁이 소모적일 뿐…없음 바로 그것이나 있음 바로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논쟁거리가 못 됩니다”(39쪽)라고 말하는데, 이는 존재물음을 자의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소모적 논쟁이었다고 말하지만 절대적 없음과 있음에 대한 형이상학적 감수성 없이 제기되는 존재물음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포기한 채, 존재물음을 묻는 것이 무슨 존재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명확하지 않은 존재물음이 따라읽기 가로막아

다른 한편 저자는 철학의 과제가 “가장 큰 하나인 있는 것과 가장 작은 하나인 그 무엇을 양 극단에 두고 이 두 끝, 한계 사이에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이 어떻게 배열되는지…우주의 전체 구조와 그 구조에 따르는 기능을 밝혀내는 일”(85쪽)이며, 이 책에서 자기가 하려는 일 또한 이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거꾸로 철학의 외연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으로서, 나로서는 철학이 과연 이런 과제를 책임지고 떠맡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철학이 경험과학이 아닐진대 철학자가 책상머리에서 그리는 우주의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우주는 ‘있는 것’이지 ‘있음’이 아니어서, 엄밀히 말해 우주의 전체구조를 그리는 건 같은 철학이라도 존재론이 아니라 우주론이나 자연철학의 일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선생이 존재론에서 묻고 있는 있음이나 없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잡히지가 않고, 이것이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대단히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남의 책을 두고 이렇게 시빗거리를 찾자면 끝이 있겠는가. 올해는 선생이 예순이 되는 해라 한다. 그러니 이 책은 선생의 회갑 기념 저서인 셈이다. 책의 출간을 축하하면서, 영원한 청년 윤구병 선생의 만수무강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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