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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쟁점: 국가 R&D 예산 5조원, 제대로 쓰이고 있나
학계 쟁점: 국가 R&D 예산 5조원, 제대로 쓰이고 있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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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투자에 부실관리, 투자효율성 개선 시급

과학기술계에서는 언제나 연구비에 '목마르다'. 이공계의 위기까지 보태져 과학기술인력 양성과 기반확충의 필요성으로 인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국가 R&D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당면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 확충만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한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한 총연구비는 1조1천1백55억원이었다. 이중 공학분야에 4천9백2억원(44.3%), 자연과학분야에 2천4백1억원(21.5%)이 지원됐다. 2003년도 국가 총 연구개발비는 5조5천억원이 넘는다. 1억원짜리 연구과제 5만5천 건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물론 실제로 총 5조5천억원을 단순히 지원연구과제수로 나눌 수는 없다. 한편 예산항목으로 보면 대학연구지원비는 9천8백억원이며, 이는 대학교수 9천8백명에게 1억원씩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여기에 민간출연 연구비, 해외학술기관의 연구비 지원 등 교수들이 연구비를 받고 있는 다른 통로들을 고려해 보면, 국내에서 '연구비' 명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돈의 액수는 훨씬 늘어난다.

연구개발비 GDP 대비 2.96%

2002년도 OECD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도 한국의 GDP대비 연구개발비는 2.96%. 스웨덴의 3.78%, 핀란드의 3.37%에 비하면 뒤지지만, 미국의 2.70%, 독일의 2.52%를 감안하면 그 순위는 꽤 높다. 현재의 연구개발비는 분명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총생산량을 고려해 보면 적은 수준도 아니다. 또한 해마다 연구개발비는 꾸준히 증가돼왔다.

그러나 스위스 국제경제개발원은 최근 한국 과학기술 경쟁력을 세계 28위라고 평가했다. 일본과 미국 등과의 과학기술 격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논문 피인용지수로 살표보자.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우리나라 SCI급 저널 발표논문수는 5만5천4백14편이고, 총 피인용 횟수는 11만8천9백19회다. 이는 세계 55위 수준에 불과한 실정으로 총 발표 편수 순위(16위)에 훨씬 못미치는 순위다. 논문의 질적수준이 싱가폴, 멕시코, 브라질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통계 수치만으로 우리 과학기술계의 위상을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효율이 매우 낮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다른 분야와 같이 엄청나게 많은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고 전 강원대 교수(지구물리학과)는 "과학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급선무는 연구비 증액보다도 낭비를 줄여 투자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아무리 연구비가 늘어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잘나가는' 분야에 집중돼 있는 연구비

투자의 비효율성은 지역별·학문별·연구자 개인별 격차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학기술부가 펴낸 과학기술연감에 따르면, 2001년의 수도권·대전 지역의 연구개발활동 연구비 집중도는 75%, 연구인력 집중도는 68.5%이다. 이 비율은 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2001년도 국내연구개발비 중 62.1%는 개발분야에, 25.3%는 응용분야에, 12.5%는 기초분야에 투자됐다. 프랑스가 24.4%, 아일랜드가 17.8%, 미국이 18.1%를 기초분야에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지원은 수도권·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공학 분야에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지방대의 한 교수는 "20년 동안 연구비를 한번도 타 본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연구를 신청하려고 해도 연구를 같이할 만한 대학원생이 없기 때문에, 지원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십억원의 연구비 수혜를 받는 교수들도 있다. "연구비가 너무 많아서 돈 쓰고 서류정리 하느라고 연구할 시간이 있겠느냐"라는 말이 농담처럼 흘러나올 정도다. 시쳇말로 '잘 나가는' 몇몇 분야의 몇몇 교수에게만 연구비가 집중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연구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교육부나 과학기술부를 통해서 나오는 연구비 등은 많은 경우, 연구비 금액 자체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고 여러 사업으로 쪼개서 배분한다. 그러나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나오는 수십억원대 이상의 프로젝트는 산학협력지원 방식으로 대학에 간접적으로 지원된다. 그런데 금액이 크다보니 기반시설이 확충된 대학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3개 부처에서 26개 기관에 중복투자

중복된 연구지원도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기제로 작용한다. 일례로 유전체연구 등 국가개발연구사업 등은 부처간 또는 부처 내 중복투자가 심각하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 과기부, 산자부가 민주당 김성순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유전체와 단백질 분야에만 복지부 등 3개부처 26개 기관의 연구 사업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 복지부에서 '질환군별 유전체센터'와 '병원성미생물유전체센터' 등 18개 기관에, 과기부에서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개발사업' 등 4개 연구사업에, 산자부는 '난치성질환유전자치료제개발', '동물세포배양기술이용 치료용단백질생산기술' 등 4개 연구사업에 각각 연구개발비용을 지원하고 있는 식이다.

연구자 개인의 중복연구 신청도 고려의 대상이다.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수행하는 연구과제의 경우, 중복지원은 권장할 만한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연구수행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연구비 확보를 위해, 동일한 내용의 연구주제로 여러 곳에 연구비를 신청하는 경우도 자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가연구개발비의 투자효율성은 상당히 낮다. 연구개발비의 투자확대보다 효율성 재고가 더 절실한 상태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민철구 박사는 '대학연구시스템의 활성화 방안'이라는 정책보고서를 통해 △연구활동 관련 각종 규정 및 지원제도의 보안 및 부처간을 통합작업 추진 △대학은 지적 재산권 확보를 위한 지원정책과 기술이전 활동을 조직적 운영 △정부 지원 주도하에 '선도적 기술이전 거점대학' 육성 필요 △실질적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력단지' 구축사업 등으로 대학과 연계된 지역별 특성화 클러스터 구축 등을 대안으로 내세운 바 있다. 연구 성과물 관리 강화와 중앙 집중적 지원 분산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연구개발비 확충도 당면한 과제이지만, 시선을 내부로 돌려 개혁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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