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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 “책은 지식 정보의 가장 신뢰성 있는 출처…기본은 지속가능한 콘텐츠”
[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 “책은 지식 정보의 가장 신뢰성 있는 출처…기본은 지속가능한 콘텐츠”
  • 조재근
  • 승인 2020.05.14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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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출판사 상생하는 환경 조성 힘쓸 것
가장 소중한 책, 10년만에 완성한 허준 ‘동의보감’ 완역판(전5권)
저자-독자 만나는 ‘책의 정원’ 만드는 꿈꿔
푸른사상사가 간행한 동의보감 완역본과 한국아호대사전.
푸른사상사가 간행한 동의보감 완역본과 한국아호대사전.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4차 혁명의 시대에도 문학과 인문 분야의 책 간행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출판사가 있다. 2000년 설립돼 올해로 정확히 만 20년을 맞이하는 푸른사상사다. 푸른사상사는 문학과 인문 이외에도 교양, 아동, 청소년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2,500여 종의 책을 간행한 종합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계간지 ‘푸른사상’을 통해 시, 소설, 산문, 평론 등 다양한 작가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1986년에 첫 발을 디딘 이래 35년간 출판인으로서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를 만났다.

1. 정보화 사회라고 하지만 정작 출판업계는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대표님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 주신다면.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출처도 다양해졌지만, 가장 신뢰성 있는 출처가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책의 존재감이 엷어져가는 디지털 시대이지만, 지식의 원천이 되는 책이 출판되지 못하면 지식기반사회도 발전의 동력을 잃게 될 겁니다. 책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출판사들이 지속 가능한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해 좋은 책을 만들어간다면 출판의 활성화는 물론 출판문화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2. 스마트폰이 ‘종이책’의 시대를 사실상 끝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책’의 본질은 그 콘텐츠에 있습니다. 물론 그 콘텐츠를 어떤 그릇에 담는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요. 출판계에서 전자책, 오디오북, 동영상 등 미디어의 다변화를 모색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도움이 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콘텐츠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출간하고, 그 과정에서 저자와 출판사가 상생하는 출판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3. 그 동안 문화부 장관상과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시는 등 업계에 공헌하신 점을 널리 인정받으신 것으로 압니다. 책, 그리고 출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35년간이나 이 일에 몸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연 같은 필연이랄까요. 사실 출판사가 첫 직장은 아니었어요. 1980년대는 국가적으로 무역업종을 육성하던 시절입니다. 저도 외국계 무역회사에 다녔어요. 외국계 회사라 직원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퇴근 후 친구와 함께 종로서적에 들러서 서가 모퉁이에 기대 책을 보다가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서로에게 선물하며 저녁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그 무렵 친한 후배가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늘 책에 묻혀 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죠. 그래서 후배도 만날 겸 책도 볼 겸 그곳에 자주 들르게 됐어요. 그러던 중 1985년 무역회사를 그만 두게 됐는데, 마침 좋아하는 책도 읽고 만들어보기도 하라는 후배의 권유로 뜻하지 않게 출판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입사한 출판사에서 햇수로 16년을 근무하며 인문학 분야의 책을 기획에서 편집까지 총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IMF를 겪고 난 어려운 시기에 내가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 2000년에 푸른사상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봉숙 푸른사상사 설립 초기부터 모험적인 시도를 해 왔다.
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는 설립 초기부터 모험적인 시도를 해 왔다.

4. 푸른사상사 설립 초기부터 모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압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출판사 초창기라고 하면 보통 잘 팔리는 책, 대중적인 책을 만들어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져야 할 시기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제가 제일 자신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푸른사상에서는 오히려 묵직한 문학전집을 발간하게 됐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2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 박화성 문학전집을 기획해서 2년 만인 2004년에 전 20권을 간행한 일입니다. 목포에 박화성문학박물관이 있는데 출판기념회가 서울과 목포에서 2차례 열렸어요. 목포에서는 문화계 유명 인사들을 모시고 선상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정말 특별한 기념식이었습니다. 20권이나 되는 전집을 원고 입력부터 시작해 교정, 교열, 화보 작업까지 거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그것이 문학계에 푸른사상사를 알리는 계기가 됐죠.

회사를 알리고 나니 좀 더 자신이 생겼어요. 곧이어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소설가로 활동해온 원로문인 구인환 선생의 작품집을 기획했습니다. 처음 계획으로는 선집 15권이었는데, 하다 보니 전집 27권으로 변경됐어요. 부담도 컸지만, 원로 선생님의 행복해하시는 모습에서 출판인으로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 여러 문인들의 문학전집을 연속으로 발행하게 됐습니다.

5. 푸른사상사는 고전과 인문학서, 특히 전집류에 강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18년에도 ‘한국아호대사전’(1900년대 이전 출생한 문인, 학자, 관료, 예술인 등 약 3만 1200명의 아호(雅號) 약 3만 8500개를 집대성한 사전-편집자주) 같은 15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내셨는데, 출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처음 출판사에 입사해서 한 일이 고전이나 개화기 시대의 귀중한 자료를 영인본으로 발간하는 일이었어요. 이곳저곳 분산된 자료들의 족적을 따라 목록을 만들고, 그 실물을 찾아내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기까지 정보와 노력,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자료의 인문학적 가치는 돈 몇 푼으로 따질 수 없어요. 지금도 출간을 결정할 때는 원고의 인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의미를 첫째로 봅니다. 금세 읽히고 잊히는 가벼운 책도 필요하지만, 몇 번을 읽어도 다시 찾게 되는 책,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스터디셀러로 꾸준히 읽히는 책을 꼽습니다. 한국아호대사전도 정말 수년에 걸쳐 했던 작업이다 보니 국내의 국학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미국 등 해외 학자들도 찾아보는 책이 됐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가볍고 쉽게 읽히는 책이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책, 시대가 변해도 독자들에게 지적인 영향과 정서적 감동을 주는 ‘느림의 미학이 있는 인문 교양서’를 내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6. 예전 출판업계에서는 책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거나 ‘곱게 키워 시집 보내는 딸’이라는 비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껏 출간한 책 가운데 가장 애정을 담았고,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지요.

한 권을 꼽으라면 허준의 『동의보감』 완역본입니다. 최창록 선생님이 번역을 맡았고, 기획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전 5권으로 간행했어요. ‘만화로 보는 동의보감’,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 여러 종류의 동의보감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푸른사상사 『동의보감』은 원본 동의보감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어체로 풀이한 책입니다. 아호대사전보다도 훨씬 유명한 만큼 매년 외국으로도 판매되고 있죠. 20년 동안 2,500종이 넘는 책을 만들었지만, 독자들에게 건강한 상식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이 책이 특별히 소중합니다.

7. 최근에 푸른사상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소개해 주십시오.

현재는 아동ㆍ청소년 시리즈에서부터 예술, 문학, 역사, 사회학 등에 관한 책을 분야별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계간지 ‘푸른사상’도 창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31호까지 나왔어요.  ‘푸른사상’은 한국 문단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개성 있는 문인들에게 지면을 열어주고, 한국 문학 발전은 물론 세계적으로 우리 문학을 널리 알리는 종합지입니다.

앞으로도 문화예술적 깊이를 담은 책, 지적 감수성을 채워주는 책, 그리하여 독자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책. 치유가 되는 책, 삶의 안내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푸른사상사에서 발간한 책들을 모아놓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마음 편히 방문해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저자와 독자가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정원이랄까, 책 박물관이랄까,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출판인으로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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