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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팬데믹을 통해 국가를 돌아보다
[정재형의 씨네로그] 팬데믹을 통해 국가를 돌아보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5.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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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코로나19 사태를 방불케 하는 영화 <감기>(2013)를 보면 인간보다도 그들을 둘러싼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분당지역의 바이러스 감염과 지역 봉쇄가 이어지고 그 지역의 감염학 전문의 인해(수애)는 변형 바이러스로 정작 자신의 딸이 감염되자 그 애를 살리려고 의료진을 기만하는 이기적인 행위를 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소방대원 지구(장혁) 역시 일반 시민들에게 전파될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인해와 그 딸만을 구조하는 행동을 한다. 두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이 우연히 백신 개발로 이어지고,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에 빠진 한국을 구원해낸 영웅으로 둔갑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종결된다.

이 영화의 윤리의식은 문제 삼을만하다.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만을 위해 영화에서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를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의나 타자에 대한 존중심은 찾아볼 수 없다. 다 어렵다면 자기 자식도 특별하단 생각을 버려야 옳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선다. 하지만 영화는 정의나 이타정신 보다 보편적 인간의 마음을 더 중시했다. 그녀가 비록 의사이긴 하지만 한 사람의 평범한 엄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의사로서, 군인으로서, 경찰로서 절대 사적인 감정을 가져선 안되지만 영화감독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제시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사람의 국민도 살려야 한다는 박애주의를 갖고 있던 탓에 대세를 그르치는 행동을 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미국과 각료들의 입장은 현실적으로 옳다. 이게 영화니까 망정이지 실제 상황이었다면 지역 봉쇄를 풀고 팬데믹을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으로 하야하는 사태가 이어졌을 것이다.

영화는 성자와 같이 행동하는 영웅으로 인간을 그리지 않았다. 의사든, 대통령이든 평범한 인간으로서 팬데믹을 대하는 자세를 그려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냉정한 전문가나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무능하거나 사악하게 나타난다. 자기만 살겠다는 엄마와 그를 좋아하는 멍청한 소방대원, 현실감 없는 센티멘털한 대통령, 이들이 벌이는 소동극이다. 영화가 특수한 인간의 평범성을 강조한 이유는 그들 보다 더 중요한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만드는 정말 중요한 요인은 인간이 아니라 정치고 권력이란 것이다. 의사가 중요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막는 것은 국회의원이고, 시장이다. 대통령이 중요하지만 약소국의 결정권을 장악한 것은 강대국의 정책과 군사력이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고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그들이고 저들이라는 것을 영화는 강조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엄마나 대통령의 목소리보다도 뎌 큰 배후의 정치세력들이다. 영화는 그들의 지배력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해간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악함에 비하면 잠시 양심과 공공성을 벗어나 엄마, 아빠의 본성으로 돌아가 자식들을 챙기던 보통 인간들의 이기심은 차라리 아름답다,

영화는 평범한 서민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아무런 힘이 없이 그저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만 받아오던 국민들은 천재지변의 사태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평소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길러왔던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현대인들은 원시적 재앙 앞에서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며 국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자유와 인권을 외치며 정부의 강압적 조치에 반항하는 이가 가끔 있으나 그것도 잠시 후 공권력의 곤봉 앞에서 굴복적 자세로 변할 수밖에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때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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