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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 왕의 물음
밀린다 왕의 물음
  • 조재근
  • 승인 2020.05.13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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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 왕의 물음
밀린다 왕의 물음

서정형 (역해) 지음 | 공감과소통 | 288쪽

《밀린다 왕의 물음》은, 문학적 향기가 짙은 불교 고전 중의 하나인 〈밀린다팡하〉를, 동/서양의 여러 번역본을 대조하여 우리 시대의 살아 숨쉬는 한국어로 옮기고, 원 텍스트의 참뜻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해설을 붙여 쉽게 풀어쓴 책이다.

기원전 2세기경에 성립된 〈밀란다팡하〉는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 원본의 산실과 재편집, 훼손과 첨삭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원형을 복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역해자)는 〈밀린다 왕의 물음〉의 전체 짜임새와 서술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 책은, 리스 데이비즈(T.W. Rhys Davids)가 빨리어 원본에서 영역한 The Debate of King Milinda를 기본 텍스트로 삼고, 이를 요약, 편집한 비구 페살라(Bhikhu Pesala)의 An Abridgement of the Milindapanha를 참조했다. 간간이 의미가 명확하지 않거나, 모호한 부분은 한역본 〈나선비구경〉을 교차 검증했으며, 우리말 번역본의 내용을 대조했다. 특히 페살라의 영역본을 접하고 축약의 필요성과 편의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중복되는 비유나 부연설명을 간소하게 줄이고, 주제별로 재편해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밀린다팡하〉를 만들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원 텍스트의 뼈대와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주제별로 묶어 새롭게 편집”했다는 언술인데, 이러한 특화된 시각과 접근법이, 기존에 출간되었던 동/서양의 〈밀린다팡하〉 번역본과 차별되는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번역/해석작업이라 하겠다.

 

대다수의 경전 번역자들이 축자적으로 번역을 하고, 책 뒤에 간략한 해설을 첨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까닭은, 한 그루의 ‘나무’는 보기 쉽지만 그 나무들이 다채롭고 다양한 양상으로 서로 얽히어 군집해 있으면서 복잡미묘한 생태계의 질서를 숨기고 있는 ‘숲’의 전경을 꿰뚫어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전 번역의 보편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관행처럼 되풀이되어 온 우리나라의 경전 번역의 미숙함과 한계, 상투성과 불성실성을 지양하고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책이 《밀린다 왕의 물음》이다. 이 책은, 불교 경전 전체에 대한 맥락과 연관 속에서 읽혀지고 반추되어야 경전의 요체가 파악될 수 있다는 저자의 신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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