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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뒤집힌 게 그림
[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뒤집힌 게 그림
  • 교수신문
  • 승인 2020.05.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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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다가 져버리니 어마한 꽃 덩치도 가뭇없다. 봄날의 야속은 새벽이슬 버금간다. 틈새 엿본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달래주듯 맴맴 돌아도 모란의 이향(異香)은 넘볼 수 없으리. 생뚱맞은 연상이지만, 요때다 싶은 제철 미식 하나가 불현듯 떠오른다. 혹시 짐작하시는지. 바야흐로 꽃게 먹는 철 아닌가! 입에 괸 단침은 넘기자. 나의 ‘미술놀이’는 입맛 보기가 아니라 눈맛 들이기에 충실할 터. 게를 그린 그림 좀 보자고 꽃 타령을 했다.

반 고흐가 언제 게를 그렸던가 묻는 이도 있겠으나 미술관에 버젓이 들어간 유작이 두 점이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각기 한 점씩 있다. 내셔널갤러리 것은 게를 두 마리 그린 작품이다. 그린 시기는 1888년에서 이듬해로 넘어가는 겨울 무렵. 반 고흐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알콩달콩 지내고 싶었던 고갱과 파탄을 낸 뒤였다. 반 고흐와 고갱 사이가 관포지교는 아니라 해도 브로맨스의 낌새는 은근 풍겼다. 하여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벌어진 저 가슴 저리도록 끔찍한 귀 자르기는 미술사에 스릴러로 변주된다. 비극에서 꼬투리를 살피는 전문가는 게 두 마리 그림을 반 고흐와 고갱의 갈등에 일쑤 빗댄다. 다 놔두고, 그림부터 뜯어보자.

반 고흐, ‘두 마리 게’, 1888~1889년, 캔버스에 유채, 47×61㎝, 런던 내셔널갤러리 위탁 보관. 선명한 색채 대비와 열정적인 붓질을 고흐스럽다 한다. 개인 소유지만 미술관에 맡긴 그림이다.
반 고흐, ‘두 마리 게’, 1888~1889년, 캔버스에 유채, 47×61㎝, 런던 내셔널갤러리 위탁 보관. 선명한 색채 대비와 열정적인 붓질을 고흐스럽다 한다. 개인 소유지만 미술관에 맡긴 그림이다.

뒤집힌 게 한 마리를 큼지막하게 채운 반 고흐 미술관 소장품과 달리, 여기 게들은 두 마리가 대비되는 모양새다. 몸집이 작은 녀석은 등을 보인 채 안정됐다. 큰 녀석은 배를 드러냈는데, 뒤로 넘어지기 직전의 버둥거리는 꼴이 안쓰럽다. 집게발로 앙버티지만 이미 뒷다리는 의지가지없는 허공에서 헤맨다. 저러다 완전히 뒤집히면 제힘으론 되앉을 수 없다. 수산시장에서 살아있는 게들을 좌판에 뒤집어 놓는 까닭을 생각해보면 안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여기서도 반 고흐다운 붓질은 어디 안 간다. 강렬한 스트로크가 캔버스 곳곳에 자취를 남기고 색채의 콘트라스트도 반 고흐스럽다. 뜨거운 레드에 슴슴한 옐로 자국이 게를 꿈틀거리게 하고, 배경을 이룬 온통 그린은 거꾸러지는 놈의 찰나적 운명을 도리어 선명하게 연출한다.

화가들의 자화상을 줄기차게 탐구한 영국 평론가 로라 커밍은 외친다. “게 두 마리는 기이한 초상화다. 다른 말로 이 그림을 설명할 수 없다.” 자빠지는 게는 붕대 두른 반 고흐의 자화상마냥 비장하다. 한국의 어느 정치인은 저 게를 두고 자가 개혁이 안 되는 권력기관을 닮았다며 제 논에 물을 대지만, 반 고흐의 그림 소재에서 유정(有情)한 그의 삶을 빼버리고 운위하기란 지난한 노릇이다. 이 그림의 유전(流轉)도 파란을 겪었다. 화가 사후 3년 만에 암스테르담의 영국 영사가 푼돈 내고 샀다. 나중에 다른 이에게 넘긴 가격이 달랑 8파운드다. 드디어 2004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오른 이 작품, 낙찰가가 100억 원을 넘었다(두 마리 게 값이 똑같을까. 넘어지는 게가 80억은 되리라. 게살이 더 통통해서가 아니다).

반 고흐의 이미지는 손오공이 머리털 뽑은 듯 수다한 도플갱어로 명멸한다. 그를 사랑하는 이라면 가슴에 나름의 반 고흐를 데리고 산다. 과민한 신경과 불뚝 솟구치는 격정 때문에 생의 마지막은 미친 채로 캔버스와 맞선 가여운 화가. 그는 해바라기와 구두와 해골과 감자와 훈제 청어 들을 마치 초상처럼 그려나갔고 뒤집어지는 게도 같은 화목(畵目)인 셈이다. 광기 어린 화가의 게 그림은 반 고흐 하나로 끝이 아니다. 그보다 300년 앞서 살았던 명나라의 문인화가 서위(徐渭)는 녹록지 않은 게 여러 마리를 남겼다(조선의 김홍도도 식스팩이 새겨진 게를 그렸지만, 여기선 노코멘트다). 서위는 부정이 판치는 세상사를 풍자하려는 속심으로 뒤집힌 게를 떡 하니 그렸다. 거기에 시 한 수를 부치며 마지막 구를 이렇게 매조진다. ‘만약 종이에 뒤집어서 그린다면(若敎紙上飜身看) / 동글동글 동탁의 배꼽이 보이겠지(應見團團董卓臍)’ ‘삼국지’ 읽은 이는 빙그레 웃겠다. 포악하고 탐욕스런 동탁의 기름진 배꼽에 심지를 박았더니 사흘 밤낮 불타더라는 얘기다.

서위의 광태(狂態)도 반 고흐처럼 애달프다. 비천한 태생과 연이은 낙방, 잘못 줄 서는 바람에 막힌 출셋길, 그리고 7년의 감옥살이로 점철된 그의 삶은 피폐한 누더기와 다름없다. 천재보다는 광기가 선명히 후대에 남았다. 아내를 살해하고, 쇠꼬챙이로 제 귀를 찌르고, 도끼로 제 머리를 내리치고…. 그러고도 살아남은 그의 처절한 에스프리는 수묵에 흥건하고 종이에 펄떡거린다.

게 그림 이야기를 마저 하자. 어느 날 서위는 댓바람에 게를 그리고 나서 선구(禪句)인양 읊조렸다. ‘게 같은데 매우 닮지 않았다고 말하면(雖云似蟹不甚似) / 게 같다고 하는 것과 역시 같은 말이다(若云非蟹却亦非)’ 오래된 중국의 화론은 노상 지적한다. 같음과 같지 않음, 그 사이에 그림의 참된 기운이 서린다고. 그림의 겉과 속이 이토록 야릇해 한낱 미물에서도 화가는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낸다. ‘황갑도(黃甲圖)’는 서위의 야심작으로 꼽힌다. 넉넉한 연잎 아래로 게가 걸어 나오는 사랑스런 작품이다. 그림의 제화시(題畫詩)를 읽으면 서위의 심사가 두렷해진다. ‘고고한 의지 길렀어도 사람들 몰라주네(養就孤標人不識) / 때 오면 급제하여 홀로 이름 불리리라(時來黃甲獨傳臚)’ 오죽 출사가 갈급하고 경륜 썩히는 게 답답했으면 화선지에 대고 아우성쳤을까. 게와 급제가 무슨 상관인지는 뒤에 설명하겠다.

몇 년 전 서위가 살던 사오싱(紹興)의 골목집, 깻잎 내음 자욱한 길을 더듬어 간 기억이 새롭다. 집에 등나무를 심어 ‘청등(靑藤)’이요, 연못을 파서 ‘천지(天池)’다. 그게 다 서위가 붙인 호(號)다. 광인의 거친 숨소리 대신 맹렬한 적막에 감싸인 서옥(書屋)에서 내 눈을 끈 것은 그림의 서명이었다. 화가는 ‘전수월(田水月)’이라 사인했다. 그게 별명이다. 서위의 ‘위(渭)’ 자를 쪼개면 ‘논에 비친 달빛’이 된다. 그런 재치는 조선 화가에게도 있다. 18세기 화단 최고의 삐딱이가 최북(崔北)이다. 그는 이름 ‘북(北)’ 자를 토막 내 ‘칠칠(七七)이’로 행세했다.

최북의 기행(奇行)은 천지 사방에 널렸다. 왕족이 바둑 한 수 물리자고 하자 판을 뒤엎지 않나, 중인 주제에 양반과 걸핏하면 너나들이하지 않나, 한마디로 걸판지게 싸대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림 솜씨로 그나마 면목을 세우던 미치광이 칠칠이가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는 금강산에서 시연됐다. 만취한 채 구룡폭포 꼭대기에 기어오른 최북, 누가 말릴 새도 없이 74m 하이 다이빙을 해버렸다. 뛰어내리며 한 말이 가관이다. “천하의 명인은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 그의 짓거리는 목불인견이 아니라 예술이다. 그의 다른 호가 ‘호생관(毫生館)’이다. 난생(卵生)도 태생(胎生)도 아닌 호생은 생명이 태어나는 붓이자 붓 한 자루로 먹고산다는 호기다. 이쯤에서 눈치챈 분도 있을 테다. 그에게도 게 그림이 있다!

최북, ‘게와 갈대’, 18세기, 종이에 먹, 26.0×36.7㎝, 선문대박물관 소장. 날카로운 선과 재빠른 손놀림이 조선식 표현주의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화가의 언성이 터져 나오는 화면이다.
최북, ‘게와 갈대’, 18세기, 종이에 먹, 26.0×36.7㎝, 선문대박물관 소장. 날카로운 선과 재빠른 손놀림이 조선식 표현주의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화가의 언성이 터져 나오는 화면이다.

어지간히 맘에 든 작품인가 보다. 바뀌는 그림 주인들이 연거푸 인장을 찍어놓았다. 척 봐도 비상하다. 붓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다. ‘지두작(指頭作) 호생관(毫生館)’이란 글씨에 손끝의 묵태(墨態)가 고스란하다. 동양에서 게 그림은 장원 급제를 비는 서원(誓願)과 같다. 왜 그런고 하니, 게 껍데기가 유난해서다. 껍데기 갑(甲), 과거 갑(甲), 첫째 갑(甲) 자가 게 그림에 따라붙는다. 요샛말로 수능 앞둔 학부모가 탐을 낼 부작(符作)이다.

최북은 갈대를 잡으려는 게를 그렸다. 갈대는 한자로 ‘로(蘆)’이고 발음이 비슷한 ‘려(臚)’가 연상되는데, 여기서 ‘전려(傳臚)’라는 말을 끌어와 그 뜻이 급제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됐다. 서위가 ‘황갑도’를 그리고 ‘급제 후 호명’ 운운한 연유가 그것이다. 최북은 벼슬에 오른 선량(選良)이 아니었다. 그가 그린 게와 갈대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은 듯 앙칼지다. 누군가의 마음을 벨 것처럼 신경질이 묻은 선조(線條)다. 손가락으로 그려서인가, 그림이 몸부림친다. 회한과 울분이 왜 없었겠는가. 밸이 뒤틀린 그는 송곳으로 제 눈까지 찔렀다. 게걸음 치듯 어긋나는 그의 행태는 고의가 다분했다. 일찌감치 고갱이 말한 바 있다. “화가는 설혹 꽃을 그려 그 뒤에 숨더라도 스스로 드러난다.”

5월 게 맛이 유독 감치다. 불우한 화가의 쓸개 씹는 맛을 잊지 말자고 글 쓴 건 아니다. 양껏 드시라.

손철주 미술평론가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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