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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에코 기호학 비판』(박상진 지음, 열린책들 刊, 272쪽)
논쟁서평: 『에코 기호학 비판』(박상진 지음, 열린책들 刊, 272쪽)
  • 김광현 대구대
  • 승인 200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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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이론에 '잔인한' 비판...기호학 세계 내에서 평가 필요

김광현 / 대구대·프랑스어학

언젠가는 서양의 석학들에 대한 요약 소개서가 아닌 진정한 비평서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었기에 '에코 기호학 비판'은 나에게 반가운 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서평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그런 반가움은 즉각 부담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부담은 조금씩 커져갔다. 에코라는 한 개인의 학문 세계를 강렬한 문체로, 이토록 꼼꼼하게 파헤치고 열성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야말로 에코 전문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그 부제가 명시하듯 '열림의 이론'을 위한 비판적 연구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에코의 초기 저술 '열린 작품'(1962)에서 소개되는 열림의 원리를 비판하고 후반부에서는 '일반 기호학 이론'(1975)과 이후의 저술에서 소개되는 기본 개념들을 분석하고 문제점들을 파헤친다.

이미 잘 알려졌듯이 에코는 1960년대에 '열린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에코 기호학 비판'에서 저자가 정확히 지적하듯이 '열린 작품'은 에코가 경험하던 기호학 이전의 단계를 장식하기도 한다.

그 이후 에코는 기호학을 이론적으로 다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 결과 '일반 기호학 이론'이라는 저술이 등장한다. 그 사이에는 소설가로서 에코도 있지만 '해석의 한계'(1990)에 이르러 에코는 과잉 해석을 경고함으로써 해석의 문제를 조금은 보수적으로 다루는 느낌을 남기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에코를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에코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거의 반세기 동안 수많은 저술 활동은 해온 에코는 초기의 과감성이 정리돼 갔고 아마도 그의 추종자 중 다수는 그 점을 이해하고 좋아했을 수도 있다. 물론 실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누구보다도 실망한 기색을 여지없이 남긴다. 그는 에코가 열림의 문제를 일종의 방법론적 짜깁기로 풀어보려 했으며 특히 그 이후에는 기존의 노선을 '배신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저자는 에코 이론의 연속성과 일관성의 부재를 들추어내는데 이 점이 이 책의 강력한 모토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그토록 큰 문제인가 하는 조금은 유아적인 반론을 제기해 본다. 1960년대는 문화와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태풍이 몰아칠 때다. 급진주의가 일종의 대안이었다. 당연히 학문도 새로워야 했다. 이것이 68혁명이고 그룹 텔켈이며 크리스테바의 '사무라이' 시절이다.

열림은 필연이자 의무였고 당연히 소장파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당시의 여러 학자 중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중세 인물을 연구한 에코가 열린 작품을 쓴 것 또한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중세 사람들은 현대적 의미의 구조 관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문화 현상은 열린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에코는 어떠했는가. 사실 그는 맹목적인 구조주의자로 남지도 않았다. 비록 열림의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찬양하든('열린 작품') 견제하든('해석의 한계') 여전히 그의 이론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한 이론이 완벽하다면 그것은 이론이 아닌 진리가 되며 그 순간부터 해당 학문 역시 학문의 지위를 잃는다. 에코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에코 이론의 전반과 특히 "미완성"의 열림 이론을 너무 잔인하게 비판하는 지도 모른다. 물론 학문 세계에서 '너무 잔인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저자는 마치 '열린 작품'에 매료돼 에코 연구를 시작했다가 열림의 기호학 이론을 세우지 못한 그에게 학문적인 것 이상으로 실망하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그러나 진정 에코 기호학의 '비평'을 시도했다면 특정한 시기의 에코나 작가 에코 또는 몇 가지 관점의 변화를 수용한 에코에 그치기보다는 (다른 기호학자들의 이론과 기호학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기호학 세계 내에서의 에코를 평가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나는 이런 차이가 일반 저술과 학위 논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림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반체계이기 때문에 이론화가 매우 어려운 연구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열림은 기존의 코드를 (어느 정도) 파괴하는 데 그 생명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철저하게 상대주의적인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열림은 통시태적 추진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것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텍스트적이자 컨텍스트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더욱 파괴적인 열림은 그 원리를 수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에 대한 신중한 고찰이 학문을 발전시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에코가 이토록 엉망이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모든 논거가 완벽하게 입증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사건일 것이다. 왜냐하면 에코의 수많은 제자들과 그를 인용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와 토론을 벌였던 모든 학자들이 그야말로 무지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코에 대한 진정한 비판서는 환영받을 만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인문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지적 사기'를 떠올린다. 비록 프랑스 인문학자들이 사기를 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이런 책이 등장함으로써 그들은 자연과학의 요소들을 조금은 순진하게 인용하는 일을 망설이게 됐을 것이다. 이 책에게도 그런 기대를 걸어보며 역시 종합화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필자는 파리3대학에서 '근대불어구어에 있어서 중성대명사 Ca의 통사적 및 기능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석의 한계', '기호와 현대예술', '기호-개념과 역사' 등 에코의 저술 세권을 우리말로 옮겼고, '기호인가 기만인가' 등 기호학적 대중문화 분석서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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