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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정신요양기관
[대학정론]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정신요양기관
  • 교수신문
  • 승인 2020.05.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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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인(부산대 의학과 교수, 국립부곡병원장)
정영인(부산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국립부곡병원장)

역사적으로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사회적 격리시설을 만들게 한 질환에 한센병과 정신병을 들 수 있다. 한센병과 정신병 환자들을 격리시켜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기에, 그 시설에 격리된 사람들의 운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신병 환자들의 이해하기 힘든 언변과 기행은 일반인들에게 더한 혐오와 기피감을 야기했다. 중세 마녀사냥의 가장 큰 희생자가 다름 아닌 정신병 환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대가 열리면서 깨어난 인본주의에 입각한 인간의 합리적 이성은 정신병 환자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신병 환자는 악귀가 아니라 병을 앓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 걸맞은 인격적 대우와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참회의 목소리였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만성 정신병 환자들은 정신장애인으로서 탈시설화(탈원화)를 통해 관리를 받는다. 탈시설의 의미는 시설에 수용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거주하게 하면서 의학적 서비스를 비롯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제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탈시설화는 장기간의 시설 생활에서 초래되는 사회기능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반성적 성찰의 결과였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관리는 어떨까. 한마디로 국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다.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을 통해 열악한 관리 환경의 속살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정신장애인들은 병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협소한 공간에서, 인간적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도 제공 받지 못하고 사회와 단절된 채 수년 동안 수용되어 있었다. 코로나-19에 의한 최초의 사망자도 20년 넘게 입원해 있던 65세 환자였다. 당면한 코로나-19의 치료와 관리에 집중해서인지 정부나 언론이나 심지어 의료계조차도 열악한 시설에 20년 넘게 수용되어 있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는 눈을 감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현실판단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상황에서 자기표현이나 주장에 서투르다. 부당한 대우나 차별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잘 따지지 못한다. 인권을 침해받을 소지도 일반인에 비해 훨씬 크다. 때문에 별도의 법을 제정해서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최적의 치료와 보호를 받으며,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비인권적 차별과 낙인으로부터 정신장애인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인권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바로 정신장애인의 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신장애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인권적인 수용시설에서 관리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서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방역에 비교적 성공한 모범 사례로 관심을 받고 있다. K-팝에 이어 K-방역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정신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실상을 확인하면 이를 마냥 반길 수만도 없게 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한국 사회는 장애인 수용시설의 인권친화적 환경 조성과 함께 장애인들의 탈시설화를 촉진해야 한다. 대규모의 열악한 수용시설들은 인권적 차원을 넘어 집단감염이나 화재 등과 같은 재난에도 너무나 취약하다.

이스라엘의 셰바의료센터는 한국의 정신병동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사례를 참고해서 세계 최초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신병동을 개설하였다. 다른 환자들보다 관리가 어려울 수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감염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전언이다. 한국의 열악한 정신병동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반면교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청도와 대구의 정신병동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정신장애인 수용시설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다. “꿋꿋이 운명과 싸우는 딸을 보며 인간 누구에게든 존경과 예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없었다면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오만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장애인을 딸로 두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의 말이다.

정영인(부산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국립부곡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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