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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취향으로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가
대중의 취향으로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가
  • 양진오 경주대
  • 승인 2003.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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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근대의 책읽기』(천정환, 푸른역사 刊, 564쪽)

양진오 / 경주대·국문학

지하철 안에서 한 권의 책을 읽거나 아니면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몇 시간째 책을 읽는 행위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행위는 책읽기를 남달리 즐겨하는 한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전적으로 근대 체제에 새롭게 형성된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풍경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방대한 시도가 있으니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다.

독자에 주목한 독서의 사회사

이 책은 근대 독자의 형성과 분화 과정, 1920∼30년대 독자들의 책읽기의 양상, 문학 작품의 수용 방식의 문제 등 독자를 논의의 한 가운데에 놓고 책읽기의 근대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보다는 독자의 존재를 논의의 주된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작가와 작품 중심으로 된 한국근대문학연구의 연구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는 미덕이 있다. 작품을 궁극적으로 완성시킨다는 독자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타자의 지위에 머물렀던 독자를 문학사의 당당한 주체로 복원시킨 것이다.

5백쪽을 상회하는 이 두꺼운 분량의 책에서 천정환은 1920∼30년대로 논의의 시간적 범주를 한정해 거기에서 책읽기의 근대적 양상과 독자의 존재 방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더 주목해야 하는 건 근대문학을 바라보는 천정환의 시각이다. 천정환에 따르면 "실제 1920∼30년대 다수의 독자가 선택한 것은 염상섭이나 이상의 소설이 아니라 '춘향전', '조웅전', '추월색' 등의 고전소설이나 신소설"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춘향전'은 17∼18세기나 방각본 시대보다 20세기 들어 활자본으로 인쇄되면서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읽혔으며, 1920년대 이후 영화나 연극 등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수없이 리메이크되기 시작했다. 작품에 담긴 의미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의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돼야 한다면 '춘향전'이야말로 20세기의 책인 것이다." 이처럼 천정환은 1920∼30년대 소위 근대문학기로 불려지는 시기에도 실제적으로 대중 독자들에게 많이 읽힌 건 신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학과 고전문학이며 이게 독서의 실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독서의 실상을 복원하려는 천정환은 근대문학사를 신문학 중심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우리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신문학 중심의 근대문학사에 가려진 대중문학과 고전소설의 존재를 되살려내지 않고서는 독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많이 팔리는 책 위주로 분석

실상만을 놓고 말하자면 천정환의 지적은 오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일어난다. 이 책의 저자가 문학 작품을 대량 생산과 소비의 구조가 반복하는 대중문화의 한 예로 파악하다보니 많이 팔리고 읽힌 책 위주로 독서의 실상을 복원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다.

문학 작품을 대중문화의 한 예로 파악하는 한 신문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1920∼30년대에도 '춘향전'이나 대중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띤 탐정소설이나 연애소설의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1920∼30년대만 그러할까. 대중문화로서의 문학 작품이라는 논점을 설정할 경우 어떤 시대를 논의하더라도 많이 팔리고 읽힌 책의 존재가 논의의 중심으로 강력히 부각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은 독서와 독자의 존재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엘리트적 독자층 는 '그들만의 독서와 독자'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문학 작품을 대중문화의 한 예로 파악하는 논점의 적실성 여부다. 이 책의 대목 대목에서 천정환은 1902∼30년대의 독자들이 실제로 읽은 건 신문학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한 시대의 독서의 실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대중 독자들의 독서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시대를 진정 대중문화의 시대로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는 게 타당한지 나로서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의문이 드는 대목은 '춘향전' 같은 고소설이나 대중소설에 저항하면서 신문학을 주도한 작가들과 독자들을 엘리트라는 다소 부정적인 어휘로 1920∼30년대 문학의 주변으로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문학 작품을 대중문화의 한 사례로 파악하는 한 신문학의 존재들과 신문학의 독자들에 대한 고려는 그들만의 문학과 독서로밖에 처리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의 문학이든 많이 팔리고 읽는 문학은 대중문학이다. 민중주의 문학이 주류문학으로 인정된 1980년대에도 실제적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 책은 대중문학이며 그 사정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1980년대 문학의 성격을 정의할 때 대중문학의 시대라고 하지 않듯 1920∼30년대의 문학도 대중문학의 시대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어느 시대이든 대중문학의 시대가 아닌 시대는 없으며 이에 대한 강조가 사실 그렇게 새로운 일도 아니다.

새로운 문학 지형의 탄생에 주목해야

이 책의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실증적으로 섭렵하며 1920∼30년대의 독서의 사회사를 흥미롭게 복원하고 있다. 저자가 복원하는 독서의 사회사를 지탱하는 문화는 대중문화이며 여기에 중점적으로 관련되는 독자는 대중 독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중의 성격은 그 역사성이 결여된 인상을 준다.

저자는 1920∼30년대라는 시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식민지적' 근대를 그리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지 않지만 이 시기의 대중들이 오늘날의 대중과 그 성격이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는 까닭에 당대의 대중들의 특수성 식민지적 근대라는 변수를 고려한 에 관한 고찰은 좀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객관적인 실상 파악도 중요하겠지만 실상 속에 숨은 진상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춘향전'이나 대중소설과는 다른 한국근대문학의 새로운 지형과 문학성을 성취하려고 한 작가 및 독자의 형성과 그와 관련된 문학 작품의 탄생을 저자의 논점 속에서 좀더 무게중심을 두고 면밀하게 파악하는 일 말이다.

필자는 서강대에서 '개화기 소설 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소설과 관련해 '베스트셀러 소설의 서사론', '근대소설의 형성과 예술가의 발견' 등의 논문을 썼으며, 저서로는 '전망의 발견', '임철우의 봄날을 읽는다', '소설의 수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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