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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절차 무시해 빚은 비극...정부 언론 책임 커
민주적 절차 무시해 빚은 비극...정부 언론 책임 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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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부안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부안에서의 촛불시위와, 경찰과 대치한 부안군민들. '부안'은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든 상징이다. ©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4개월간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부안문제는 폭력사태로만 비춰졌을 뿐, 일련의 과정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재 표면적인 대립은 ‘주민투표 연내실시’ 여부에 관한 것이지만, 이를 둘러싼 정부와 주민간의 대립양상만 부각시킨다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 현재 다수 언론의 사건중심적, 편향적 보도에서 벗어나 부안사태의 근본적 원인들을 따지려면 이와 관련한 각 입장들의 대응과정과 충돌양상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군수의 독단과 정부의 말바꾸기

우선 정부입장을 살펴보자. 현재 언론이 정부입장만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편파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정부의 오류'를 감추고 있지만, 부안사태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우선 지난 7월 부안군의회가 유치안을 부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부안군수가 이를 강행한 것에 대해 정부는 군수를 두둔하며 어떤 개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보상금 문제도 애초에 보상약속과 달리 개별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또한 이후 핵폐기장 유치 백지화를 요구했던 시민들이 주민투표 실시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정부는 재차 말을 바꿔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거부했다. 이러한 정부의 말바꾸기와 변덕스런 태도는 총리실과 산자부의 입장차로, 일관성 없는 정책발표로 나타났다.

때문에 부안문제가 점차 폭력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었음에도, 정부는 주민 1.25명당 경찰병력 1명을 투입하는 강경방침을 내세웠다. 나아가 시민단체가 중재안으로 내년 1~2월 투표실시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음에도 정부는 타협불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책 일관성으로 신뢰도를 심어줘야 할 정부가 현 사태를 몰고 온 근본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부안군수가 핵폐기장 유치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건 현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지난 7월 11일 김종규 부안군수는 ‘원자력 발전소 수거물 관리센터 유치신청’을 선언한 데 이어 15일 결국 위도가 후보지로 결정됐다. 군수는 군의회의 부결도 무시한채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마치 현 사태가 핵시설 안전성이나 경제성 문제로 비춰지지만 그 이면에는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결정한 부안군수의 과오가 있다. 

부안군 주민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이지만, 이들 의사는 제대로 반영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역이기주의 온상이나 폭동과 난동자로 몰리고 있다. 주민들은 핵폐기장 유치 결정 이후 촛불집회 등 평화적 시위방법을 취했다. 이후 중재안으로 주민투표안이 제시되자 주민들은 곧 수용의 뜻을 비췄다. 그러나 정부가 연내 투표실시 불가로 입장을 바꾸자 양자간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점차 뚜렷해졌다.

언론, 편파적 선정적 보도로 사태 왜곡

지역과 중앙언론사들 역시 현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선 최근 폭력사태에 대해 다수 언론들은 대책위가 혼란과 과격폭력시위를 주도하고 있으며, 부안은 국가기구 기능이 존재할 수 없는 무정부상태라는 선정적 여론조성에 부심했다.

폭력사태 이면을 살피려는 노력은 커녕 상식적인 원인분석도 없이 시위의 과격성,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문제삼았다. 공권력이 발동하자 7월경부터는 아예 정부측으로 돌아서서 사태를 왜곡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시민단체들은 그간 정부와 주민 양자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시도해왔다. 파국적 양상으로 치닫는 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서 일단 타협안을 마련해보고자 하는 의도다.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20여개의 시민단체들이 ‘부안 핵폐기장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계 대표자 기자회견’을 지난 11월 21일 열었고, 최병모 민변협 회장은 지난 23일 주민투표 시기에 대해 내년 1~2월로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 타협점을 찾고자 했다. 24일에는 긴급토론회를 가져 부안보도에 대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기도 했으며, 지속적으로 사태해결 촉구를 위한 국제포럼 등을 열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부안 핵폐기장 건설 관련 상황 일지

▶5월
13일 위도대책위, 주민 80%이상 서명으로 부안군의회에 유치 청원.
19일 시민사회단체 핵폐기장 반대 성명서 발표

▶6월
핵폐기장 반대 대책위 준비위 구성(총 8차 회의), 서명운동, 홍보, 피켓시위

▶7월
2일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소 추방 범부안대책위 발족(34개 단체 참여)
11일 김종규군수 핵폐기장 유치선언 기자회견/ 군의회 위도 주민의 핵폐기장 유치 청원 부결/ 대책위 원천무효 주장 기자회견
14일 김종규군수, 김형인의장 산자부에 핵폐기장 유치 신청서 제출.
22일 핵폐기장 백지화와 군수퇴진 결의대회(1만명 참석), 경찰의 과잉폭력진압/ 대통령 불법시위 엄정 대처 지시
23일 핵폐기장 철회 집회(2천명), 대통령 김종규씨에 격려전화,
24일 산자부 핵폐기장 부지선정위원회 위도를 최종후보지로 발표,
25일 핵폐기장 철회, 군수퇴진, 노무현 규탄 범부안군민 결의대회(1만2천명)/ 행자부 1천2백5십억원 지원계획 발표
26일 산자부장관 위도주민에게 현금지원 약속/ 행자부장관 시위대 엄중 처벌 주장/경찰 폭력진압/촛불시위 시작
27일 청와대 현금지원 관련 의견 발표 혼선, 국무총리실로 결정 이관
28일 국무회의 위도 현금지원 불가 및 실질적 지원책 강구로 입장 전환
31일 대책위 핵폐기장 반대 및 핵수송선 저지를 위한 해상 시위,

▶8월
1일 행자부장관 주민투표 연말 시행 주장
13일 핵폐기장 철회 부안군민 총파업투쟁(2만여명)
21일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2차 해상시위(주민 3천명, 선박 400척 활동),
28일 김두관 행자부장관 방문 대화제의
29일 정부 대화기구 구성/ 대책위 상임위 정부 대화제의 수용

▶9월
2일 대책위 성명 : 대화를 위해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 표명
8일 내소사 군수 면담요구 -> 9.8사태 발생
9일 경찰 병력 60개 중대(7천 5백명) 부안 배치
30일 고건 총리 '조건 없는 대화' 제의

▶10월
3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구성 사전모임, 총리와의 대화
8일 부안대책위 정부 1차 대화 실무기구 회의(정부측5,대책위5,추천인사3 합의)
24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1차 회의
31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2차 회의

▶11월
7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3차 회의
12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실무간사회의 1차
13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부안측 국무총리 면담
14일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 4차 회의(중재인 최병모 변호사 연내 주민 투표 실시라는 중재안 제안)
15일 부안 대책위 연내 주민투표 중재안 수용
17일 정부 연내 주민투표 실시 거부
18일 부안 문제 관련 국무총리실 입장 발표 기자회견(공동협의회 결렬)
19일 부안 핵폐기장 취소 촉구 부안군민 총파업 결의대회/ 허성관 행자부 장관·최기문 경찰청장 폭력시위 엄단 기자회견(경찰병력 추가 상주(약 8천명) 및 불법시위 엄단 강조)
21일 노무현 대통령 부안 관련 발언- ‘선회복 후질서 및 대화 시도’, 불법 엄단
21일 부안 핵폐기장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기자회견
(시민사회단체 부안 핵폐기장 주민투표 중재단 구성 합의 및 정부측에 중재 제안)
21일 부안 현지 경찰 병력에 의한 촛불 시위 원천 봉쇄
24일 부안핵폐기장 평화적 해결위한 주민투표 실시 촉구 2천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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