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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세계사
재난의 세계사
  • 교수신문
  • 승인 2020.05.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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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세계사 / 루시 존스
재난의 세계사 / 루시 존스

 

루시 존스 지음| 권예리 옮김 | 홍태경 감수 | 눌와 | 356쪽

2천 년 전, 베수비오산이 분화해 폼페이가 괴멸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화산쇄설류와 독성 기체 때문에 죽음을 맞았고, 한때 번영했던 도시는 불과 며칠 사이에 두꺼운 화산재 아래 묻히고 말았다. 오늘날 폼페이의 유적을 보면서 우리는 고대인들이 왜 활화산 바로 아래처럼 위험한 곳에 도시를 짓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화산 인근은 비옥하면서도 배수가 잘 되는 화산토의 성질 덕분에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이다.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홍수를 일으키는 강은 인류 문명의 요람이기도 하다. 나일강의 이집트문명이 그러했고, 황하에서 탄생한 중국문명이 그러했듯 고대 문명의 발전은 모두 홍수와 치수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대도시들은 강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언제나 자연재해와 함께 살아왔으며, 자연재해로부터 전적으로 안전한 곳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미국의 정부기관인 미국지질조사국에서 33년 동안 일한 재해학자 루시 존스가 쓴 《재난의 세계사》는 11개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진, 홍수, 태풍, 화산 등 자연재해 앞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는 법을 고민하는 책이다.

홍수, 지진, 화산과 같은 자연재해는 파괴와 비극을 낳는 끔찍한 재난으로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재난의 세계사》에 따르면 이런 자연재해는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동의 일부이기도 하다. 홍수와 태풍은 대기의 순환 과정에서 일어나고, 지진과 화산은 지각과 맨틀의 움직임으로 발생한다. 태풍을 비롯한 기상 현상은 바다의 물을 지구 곳곳으로 옮기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하는 단층은 산을 이루고 샘을 만들어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을 마련한다. 화산 역시 땅속 깊은 곳의 다양한 물질을 지표면으로 내보내 생태계에 일조한다. 자연재해로 대표되는 지구의 복잡다단한 자연현상이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처럼 온갖 생명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곳이 아닌, 훨씬 삭막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재난의 세계사》의 저자 루시 존스는 미국지질조사국에서 다양한 자연재해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비책을 세운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인간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고도로 도시화되고 복잡한 기술 체계에 의존하고 있기에 도리어 재난에 취약해져 있음을 지적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정확한 과학 정보를 습득하고 널리 알려야만 미래의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2004년 남아시아 지진 당시, 큰 지진 이후엔 쓰나미(지진해일)가 몰려온다는 사실을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까. 2009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당시 미국 연방긴급재난관리청은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를 휩쓸 수 있음을 알고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둔 상태였지만,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닥쳐온 카트리나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재난이 벌어지고 난 뒤에 후회하면 늦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계속되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기상재해의 피해는 점점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은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인 백두산과 한라산은 한때 사화산 혹은 휴화산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모두 활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대문명의 발전한 과학과 기술은 옛날이라면 대처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예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의 모든 것을 알아내기에는 아직 인류의 지식이 부족하고, 때로는 알고도 대비가 부족해 큰 재난을 겪기도 한다.

이 책의 원제 ‘The Big Ones(대재난들)’는 캘리포니아에 언젠가 일어날 샌앤드리어스단층 지진을 가리키는 말인 ‘The Big One(대재난)’의 복수형이다. 이 책의 저자 루시 존스는 과학자지만 한편으론 캘리포니아주가 맞이할 대지진에 대비한 시나리오인 ‘셰이크아웃 시나리오’를 만들어 지진에 대비한 훈련을 기획하고, 로스앤젤레스시 시장 에릭 가세티를 설득해 지진에 대비해 로스앤젤레스 전역의 사회기반시설을 보강하고 시의 내진 규정을 개선하고 취약한 건물의 보강 공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독자들이 직접 취할 수 있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깨닫고 준비할 때 세상은 좀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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