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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한국사회의 재구조화』(박길성 지음, 고려대출판부 刊, 290쪽)
본격서평 : 『한국사회의 재구조화』(박길성 지음, 고려대출판부 刊, 290쪽)
  • 김이준 경희대
  • 승인 200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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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조화 설명 솔깃...윤리적으로 편향된 전망

김이준 / 경희대·사회학

이 책은 지난 10여년 간 세계화, 정보화 그리고 IMF 위기를 거치면서 전개된 한국사회의 변동에 대한 담론이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시변동을 세계화, 정보화의 두 축으로 설정하고 이의 운영질서로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세계적 차원에서의 거시적 변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과 적응'을 해부하고 진단한다. 이를 토대로 세계화, 정보화 및 글로벌 자본주의의 대두로 인한 '사회해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에 관한 담론에서 저자는 논의를 포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의 원인과 세계화와 국민국가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상이한 주장에 대한 비판적인 논쟁을 토대로 '다원론적 입장'과 '변형론적 입장'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개념규정 약해

물론 저자의 주장처럼 세계화현상은 "단일 요인으로 환원되거나 결정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중층구조"(40)이며 "이중의 운동성을 갖는 역사적 과정"(42)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세계화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인 "세계화는 덫인가 기회인가?"(19)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려면 20세기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 대한 일별이 전제돼야 하지만 이 책에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나 성찰은 나와있지 않다.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던 '포드주의'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1970년대 중반 제2차 세계경제위기 즉 포드주의의 위기가 발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내적 속성상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자신의 정상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화 현상은 '포드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다.

이는 국제자본과 자본주의 중심국에서 새로이 권력을 담당한 신자유주의 정권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특히 포드주의 시기에 구축된 타협적 계급관계를 타파하고 사회적 세력관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고자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자본의 대표적인 기제가 신기술과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직의 도입과 생산의 국제화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현존하는 세계화는 양면적인 성격을 띤 "풍요와 배제의 전 지구적시스템"(31)도 기회도 아닌 "덫"이라는 것이다.

기술결정론적인 시각도 보인 정보화론

'정보사회'에 대한 담론에서 저자는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정보과학기술의 혁명으로 도래하는 '새로운 문명사'인 정보사회의 생산성 증대가 인간성회복이라는 인본주의적 과제와 어느 정도 친화력을 가질 것인가 라는 문제제기로 출발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정보사회의 이해에 관한 담론에서 중요한 축인 정보사회의 전망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극소전자공학과 정보기술의 혁명적인 발달은 정보사회라는 새로운 발전양식의 탄생과 경제구조의 "지식정보경제로의 이행"(70)을 가능케 했으며, 글로벌 경제라는 정보경제양식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다른 한편 정보통신혁명으로 인해 현대 인간의 삶의 형태가 '고 이동성(high-mobility)'으로 특징지워지며, 인터넷에 의한 네트워크로 인해 새로운 의사소통방식이 가능하게 됐다고 한다(75). 게다가 정보사회는 획일적인 대중문화에서 점점 더 다양성 중심의 탈대중화 문화로 변모돼가며(80), 미래문명은 단선적이고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각기 다른 것들이 혼합해 하나의 완성된 조화를 만들어내는 '레고문명' 즉 '합성의 문화'로 구성된다고 한다(83).

하지만 정보사회의 전망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포섭'과 '꿈' 측면만 부각될 뿐 '배제'와 '짐' 부분은 거의 사상돼 있다. 이는 저자가 기술결정론적 시각에 경도돼 있는가 하는 의심을 준다. 나아가 저자는 자신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을 "정보사회의 포섭과 배제의 논리에 대한 정확한 숙지가 요구되는 것이다"라는 당위적인 주장만으로 대체하고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정보사회에 대한 논의에서 과연 문명사적 시각이 적절한가일 것이다.

현대사회의 정보화 가속으로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은 현존하는 정보사회에서도 여전히 기존의 자본의 논리가 정보산업과 정보상품을 매개로 시장에 의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도 봤듯 정보기술은 생명 유전기술 및 나노기술과 함께 첨단신기술로서 자본의 세계화전략을 관철시키는 핵심도구일 뿐만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새로운 시장으로서 새로운 이윤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보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도래된 정보사회에서 자본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대될 수 있을지언정 인간성회복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새로운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재구조화 논의 설득력 있다"

저자는 세계화, 정보화 및 일련의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자본주의는 재구조화 과정에 있으며 이의 현대판 결정본이 '글로벌 자본주의'라고 진단한다(90). 이는 이전 시기와는 달리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모토로 하고 있으며, "미국의 룰에 의해 운영되는 양식"이라고 한다(96). 이러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강제력으로 인해 개별 국가경제체제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재구조화" 즉 "강요된 조정"(90) 아래 놓여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 "사회적 약자의 약화, 사회통합의 붕괴, 불균등발전의 심화"(93)다.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에 대한 저자의 이런 시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재구조화의 결과로 출현된 역사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특징지을 것인가다. 필자가 보기에는 "글로벌 자본주의"는 포스터 포드주의적 자본주의로 개념정리가 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탄생이후 그 범위와 형태의 차이는 존재했을지언정 항상 '글로벌' 체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터 포드주의' 체제도 그의 속성상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점점 더 심화시킴으로써 그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여러 가지 사회운동의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예: 시애틀 다보스 등지에서의 반세계화 운동).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자본주의의 재구조화 과정은 단선적인 방향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적 상관관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거시적 변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과 적응”에 대한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의 세계화는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IMF관리체제, 금융위기, 경제위기, 사회해체로 나타난다.”(128) 이로 인해 한국의 세계화는 “사회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기대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운영방식으로의 동형화에 맞추어진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구조조정압력과 사회구조의 해체적 양상으로 경도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경제위기로 야기된 사회 각 부문의 구조조정이 소위 경제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의 형태가 아니라 굴절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있다고 한다.

즉 재벌체제의 개편과 경제력 집중의 완화는커녕 오히려 재벌중심의 자본 집중화 현상이 강화되고(비교 145~6),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실업자의 양산, 비정규직 노동자비율의 증가로 인한 고용구조의 질적저하 및 구조적 실업 그리고 소득분배구조의 악화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 결과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은 특히 “약자의 약화”(145)를 야기시켰을뿐만아니라 “사회관계의 이완과 분열”(153) 즉 “사회적 비용”을 자아냈다고 한다. 이는 정체성의 위기 및 신뢰구조붕괴 그리고 사회세력간의 갈등심화 나아가 한국사회의 전반적 삶의 질의 하락으로 나타난다고 한다.(비교 154)

총체적 분석 결여된 윤리적 해법

그리고 저자는 “신뢰의 결핍이 경제위기의 본질적인 원인”(171)이므로 “외환위기로 인해 이완된 사회관계를 추스르는 해법은 신뢰의 복원이다”(178)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재구조화”과정에서 저자는 “세대”의 개념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세대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서 “결정인자”로 서서히 등장하고 있으며(214), 이 개념에는 “사회의 변화가 동반”된다고 한다.(216) 다시 말해 “세대를 단위로 역사가 변화는 것이다”고 한다.(216) 저자는 특히 사회의 정보화의 가속화와 함께 “정보화의 기수”(183)로서 “새로운 대중”(183)으로서의 “N세대”의 출현으로 인해 일상의 사회관계는 물론이고 “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212)가 예고된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재구조화”에서 저자는 “사회관계적 시각”에서 한국사회의 해체현상에 대해 실증적, 경험적 분석방법으로 보다 사실적이고 의미있는 진단을 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97년 외환 금융위기의 발발원인과 위기전개과정 및 그 극복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저자는 외환 금융위기로 야기된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해 단지 사회적 관계와 “신뢰의 복원”(178)이라는 규범적 윤리적인 해법에 기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규범적 윤리적 시각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대안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세계화 정보화 및 신 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해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를 바탕으로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모색하는 성찰적 세계화”(244)와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균형적 긴장”(247) 및 “미국형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동형적 모방화에 완급”(250)이 요구된다고 한다. 나아가 “핫머니의 이동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규제장치”(251)가 마련되어져야하며, “기술 경제논리에 의한 과잉정보화를 경계”해야 하며 “분쟁해결을 위한 조종시스템의 선진화”(260) 및 “일자리 우선의 발전모델”(261)이 요구되어져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대안적 과제와 관련하여 규범적 당위적 주장만이 존재할 뿐이지, 이와 같은 과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가 않는다.

21세기 접어들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신 자유주의적 세계화 정보화 및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정보 불평등 확대, 고용구조의 악화와 실업증가 그리고 빈부격차의 심화는 결코 규범적 윤리적 요청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문제는 오로지 정치적 사회적 실천 즉 현존하는 ‘포스터 포드주의’적 자본주의의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극복되어질 것이다.

나아가 현존하는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이를 지향하는 시민 사회단체들의 국제적인 연대에 의한 실천가능성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N세대”가 이러한 실천의 주체로 자리매김 지워질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탈정치성으로 인해 “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독일 쾨테대학에서 '이론의 위기와 위기론'(Krise der Theorie und Theorie der Kris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분야는 사회변동론, 국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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