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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관료·언론의 빗나간 투기 해법
일부 관료·언론의 빗나간 투기 해법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3.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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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폐지 주장에 비판 일어
 

일부 고위 관료와 언론이 불확실한 근거로 잇달아  부동산투기의 원인을 고교 평준화로 지목하는 등 교육정책 비판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지난 달 9일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북에 특수목적고를 많이 만들어 강남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라고 밝혔다. 같은 달 30일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강북을 살리려면 자립형 사립고 정도는 두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강남 지역 부동산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교 평준화 시스템 폐지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교육 문제가 부동산 투기 열풍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근거도 희박한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 급등이라는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를 들고 나온 것. 예컨대 명문대 진학률이 가장 많은 서울시내 과학고 2곳과 외국어고 6곳 모두 강북에 위치해 있는데도, 유독 강남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현상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들의 주장은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언론에 의해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언론들은 ‘평준화 교육정책 빨리 포기해야’(중앙일보 사설 10월 10일), ‘교육자율화해야 강남 집값도 잡힌다’(조선일보 사설 10월 11일), ‘평등의 신화를 깨라’(동아일보 칼럼 11월 9일) 등 관료들의 발언에 맞춰 평준화 폐지론을 주장했다. 이들 언론은 고교평준화가 상위권 학생의 학력 하향 평준화, 사교육 팽창, 부동산 투기 과열을 불러왔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관련기사 3면 참조>

 

하지만 언론이 평준화 폐지를 주장한 근거 또한 충분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초 서울대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텝스와 수학 시험 결과. 텝스와 수학 시험 응시학생의 27%, 13.7%가 낙제점을 얻자, 조선일보는 ‘고교 평준화로 인한 상위권 학생 학력의 하향평준화’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서울대 신입생 대상 시험은 꾸준히 계속된 것이 아니어서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평준화와 비평준화 지역 출신 학생을 나눠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준화 폐지의 근거로 삼기 어려운 자료였다. 현재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의 49.6%가 비평준화 고등학교다.

 

‘고교평준화의 사교육 팽창 유발설’ 또한 인과관계가 미흡한 사실이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00년 과외비 실태 조사서’에 따르면, 가구당 과외비 지출은 평준화 지역인 서울 강남지역보다 비평준화 지역인 일산과 분단 등 수도권 신도시 지역이 오히려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부 관료와 언론의 교육정책 비판에 대해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김태수 교수(그리스도신학대 교양학부)는 “이들 언론이 주장하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 및 고교 평준화 폐지는 공교육이 정상화될 때나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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