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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Cinelogue] 국민의 준엄한 심판만이 희망인 세상
[정재형의 Cinelogue] 국민의 준엄한 심판만이 희망인 세상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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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랜 시간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신이시여 제발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실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정의는 없습니다. 있는 자들은 이기고, 없는 자들은 무력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지쳐 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심하고,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고, 우리 체제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법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러분이 법입니다. 여러분이 법입니다. ...저의 믿음은 믿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면 믿음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만약에 우리가 정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우리 마음속에 정의가 있다고 믿습니다."

12명의 배심원이 준엄한 심판을 통해 정의를 세운 영화 <심판 The Verdict>(1982, 시드니 루멧 감독)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변호사 프랭크 갤빈(폴 뉴먼)은 최후 변론에서 배심원단에게 간곡한 호소를 한다. 여기서 탄생한 이 명언은 갈 곳 잃은 현대인들이 다시금 되새겨 볼만한 소중한 교훈이다. 이 대사가 탄생한 영화의 배경은 이렇다. 주인공 갤빈은 과거 잘 나갔던 변호사였으나 자신의 로펌이 저지른 범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직장에서 몰려난 불우한 인간이다. 그 여파로 삶의 희망을 잃고 근근이 연명하던 차에 의료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사건을 변호하게 된다. 처음엔 합의금만 획득하려는 불온한 생각이었으나 점차 가난한 자의 억울한 심정에 동병상련되어 재판에 성실히 임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의료과실을 한 병원을 후원하는 거대 종교재단과 로펌이었고 판사 역시 그들 편이어서 편파적이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할 유명한 의사를 증인으로 확보했으나 매수당해 사라져 버렸고 미인계까지 써서 갤빈의 새로운 애인이 상대 로펌의 스파이였음이 밝혀진다. 진행과정의 모든 정보가 그녀를 통해 반대 로펌으로 새나갔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갤빈은 끝까지 증인을 확보하려고 온정신을 집중한다. 결국 결정적 증인을 법정에 세웠으나 상대 변호사와 판사의 교묘한 법해석으로 증거채택을 불발시킴으로써 마지막 남은 증거마저 수포로 돌아간다. 갤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법을 초월하는 권력의 횡포라는 것을 실감한다. 세상엔 법을 조롱하는 용어들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그중의 하나다. 돈 많고 거대한 권력조직인 종교집단에 대항할 정의로운 법관은 없는 것인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다. 판사가 법정을 자신이 유리하게 끌고 나가는 횡포는 법을 집행하는 법관이라기보다 조폭에 가까운 행동이라 볼 수밖에 없다. 양심도 법도 다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갤빈이 할 수 있는 수단은 배심원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의 최후 변론은 이런 배경에서 취해진 유일한 희망이다. 영화는 최근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과 무정부주의 상태의 심리현상을 반영한다. 415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준엄한 심판을 했다. 그 결과를 놓고 해석이 난무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결국 옳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은 판단을 하고 이면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를 여당의 승리고 야당의 패배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 후보들로부터 180석이 나온 것은 유권자들의 현실이 아닌 ‘이상’을 반영한 것이다. 국민들은 항상 정의를 원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을 선택했을 뿐이지 정말로 믿어서 선택했다고 보진 않는다. 그래서 걱정이다. 우리 사회는 여야 그 어디에서도 정의를 실현할 ‘진실한’ 정치가 없다는 게. 단지 국민들의 ‘열망’만이 존재하니까. 그래도 어쩌랴. 정치 잘 하는 사람들 나올 때 까지 기다려야지. 국민은 열심히 좋은 사람 찾아 지지할 최후의 보루인걸. 씁쓸하면서도 슬프고 또한 희망적이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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