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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혹은 대학교사(university teacher)!
교수? 혹은 대학교사(university teacher)!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11.24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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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특집 : 분화하는 교수사회

“정말로 제가 교수인지 모르겠어요.” 지방사립대의 교수들이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육사회학회의 ‘교육사회학연구’ 최근호(제13권 제2호)에 실린 손준종 우석대 교수의 논문 ‘대학교수의 노동과정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대학변화와 지방 사립대 교수의 노동과정 변화를 상세히 분석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 지방사립대의 재정악화, 연구중심적 정부정책, 계약제 도입, 업적평가제 강화, 경쟁적 연구기관 출연 등은 학문의 자율성과 함께 보장받던 전문직으로서의 교수 지위를 크게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은 ‘교수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다양한 방식의 노동통제’였다.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의 교수 이미지가 무색하게, 학생모집을 위한 고교 방문, 학생 등록을 권유하는 전화상담 등에 내몰리는 지방대 교수들의 삶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일러스트 김태주

“언제부터 학점이나 주는 사람이 됐을까”

최근 입시철마다 세일즈로 내몰리는 지방대 교수들의 애환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다른 것 제쳐두고 학생을 모집하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지 어떻게 합니까. 그게 현실인데요.” 지방 ㅊ대학의 권 아무개 교수의 말이다. 요즘 권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수상과 현실로 맞딱들인 역할 사이에서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군데에서 얻으면 다른 군데는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 모두들 뛰어든 마당에, 본연의 임무가 뭡니까. 애가 타는데.” 학생수가 모자라는 상황이 교수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손준종 우석대 교수가 최근 ‘교육사회학연구’에 발표한 논문 ‘대학교수의 노동과정 연구’에서 주목한 것도 이 같은 ‘역할갈등’과 ‘괴리감’이었다.

“제가 보기에 우리 대학 교수들은 ‘전문직으로서 교수(professor)’보다는 그냥 ‘대학교 교사(university teacher)’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요.” 손 교수는 K대 모 교수의 이 같은 말을 인용하며 “교수들은 보편적인 교수 역할과 현실적인 역할 사이에서 갈등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역설적 상황에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학생수 감소와 재정 악화 등으로 인한 대학내의 팽배한 위기의식이 연구·교육 외에 대학 홍보 및 학생모집을 위한 고교방문, 학생등록을 권유하는 전화 마케팅, 직업교육 및 자격증관련 교과목 운영, 대학·학과평가 보고서 및 재정지원 신청서 작성 등을 가능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손 교수에 따르면, 교수들이 노동과정에서 경험하는 정체성 위기는 크게 두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 하나는 조직과 사회가 기대하는 일반화된 정체성과 스스로 지각하는 정체성의 차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정체성이 여전히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ㅅ대학 신 아무개 교수가 “한마디로 블랙코메디입니다. 교수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도 점잖은 표현이죠”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신 교수는 학교 홍보물과 대학 기념품을 챙겨 지방 고등학교를 순례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치지만, 수도권대학으로 옮기려는 상당수의 편입 준비생들을 고려해 까다로웠던 수업방식을 바꾸고, 취업만이 전부인 학생들에게 속절없이 해당 학문 분야의 현안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에는 ‘언제부터 학점이나 주는 사람이 됐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교육중심대학이면서도, 교수를 평가할 때는 교육에 비해 연구실적을 더욱 중시하고, 실적을 평가할 때는 전공분야별 특성과는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어느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속에 조용한 분노가 일었다.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ㅊ대학의 정 아무개 교수는 재직하고 있던 10여년 동안 대학원생 제자를 4명밖에 받지 못했지만, 학문분야평가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대한 자체평가보고서를 2~3개월 동안 두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정 교수에게 주어진 현실은 교육중심대학의 교수였지만, 대학은 대외용으로 연구중심대학의 교수 역할을 요구했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겠죠”라는 냉소적인 태도와 함께 가치혼동 상태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절대적인 학생수 부족’과 정부의 ‘연구중심적 대학 정책’이 불균형하게 맞물리자, ‘잘 가르쳐야 하는 일’과 ‘제대로 연구해야 하는 일’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일상화된 교수노동의 관리·통제

또 다른 한편, 손준종 교수는 ‘교수노동이 관리 된다’는 것이 최근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교수노동에 대한 정교한 통제·관리 시스템이 개발됐고, 이 시스템에 따라 교수들이 다양한 노동통제를 경험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교수의 노동이 수량화되기 전과 수량화된 이후는 교수노동에 대한 교수들의 자기 인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

교육·연구 등 모든 것이 자율로 맡겨졌던 때와 달리,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돼 있는 자신의 계정에 담당시간 수, 수강학생수, 강의평가점수, 학생상담횟수, 연구실적, 대외활동, 사회봉사실적을 입력하면 대학의 표준화된 기준에 따라 구체적인 점수로 평가를 받게 되는 교수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교수들은 지식을 탐구하고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내적 성숙 보다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진행되는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측정 가능한 연구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자신의 일이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이전까지는 교수가 학문의 자율성을 토대로 통합적인 사고 아래 교육·연구를 수행해왔다면, 지금은 관리시스템이라는 정해진 틀에 따라 종속적으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갈등이 “내가 현재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는 말이었다.

대학이 진리와 순수한 지식 탐구보다는 경제적 이윤을 증대할 수 있는 응용지식 생산에 치중하고, 교수의 직업적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가 경제적 합리성과 시장 논리로 대체되고 있는 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교수가 교육소비자들인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노동을 파는 지식상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또 최근의 이러한 변화가 교수노동에 대한 통제이자 학문에 대한 시장의 침식인지, 아니면 교수 역할의 ‘대안’ 모색을 위한 계기인지 아직 섣부르게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학문 탐구’가 되려 낯 뜨거운 단어가 되고, 대학이 ‘학위를 취득하는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냉소적인 분위기는 왜곡된 대학 교육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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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2003-12-08 14:32:23
입학
교육
취업
연구
홍보
학생지도
교육부보고서작성
산학연계
연구비 획득
외국대학 연계
기타 등등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다 우수하길 바란다.
그것이 안 될 경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압력을 행사한다.
대학교수가 신적 존재인가?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풍족한 지원은 없는 현실에서...
교수로서 역할만을 강조한다면 그 교육현실에 대한 미래는 뻔한 것이다.
맞다.
교수의 명함보다 대학 교사로서 역할이 더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과연 존재하는가?

대학교수 2003-12-08 14:31:48
입학
교육
취업
연구
홍보
학생지도
교육부보고서작성
산학연계
연구비 획득
외국대학 연계
기타 등등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다 우수하길 바란다.
그것이 안 될 경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압력을 행사한다.
대학교수가 신적 존재인가?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풍족한 지원은 없는 현실에서...
교수로서 역할만을 강조한다면 그 교육현실에 대한 미래는 뻔한 것이다.
맞다.
교수의 명함보다 대학 교사로서 역할이 더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과연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