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역사 속에서도
한국역사학계에서는 학자들의 명단에 함석헌을 넣지 않지만, 1934년부터 월간 ‘성서조선’에 20회동안 연재되었던 ‘뜻으로 본 한국역사’(당시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로 간행) 하나만으로도 역사가로서의 함석헌을 진지하게 논의할 만하다고 노 교수는 전한다.
“조선사 전체에서 발하는 신음소리가 너무도 컸고, 그 속에 숨어 있는 襤褸가 너무도 심해 자기 기만을 하지 않고는 유행식의 ‘광휘 있는 조국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참담한 사실을 젊은 혼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스스로의 처지에 함석헌은 탄식했다. 마침내 그 남루를 견디는 역사를 직시하며 함석헌은 ‘고난사관’으로 한국사를 보게된다. “고난이야말로 조선이 쓰는 가시면류관이고 또 세계의 역사는 요컨대 고난의 역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지껏 한국을 학대받는 婢女로만 알아 왔는데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시면류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 교수는 말한다. “내리막으로 치닫는 역사, 그 원인을 함석헌 선생은 철학적·시적·종교적 심각성이 빈약한 민족성의 결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깊은 진리의 종교가 아니라 낙천적인 儀式의 종교만 있고, 자아에 대한 깊은 응시가 없어 자존심이 없으며, 그 까닭에 자유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인은 이중의 고난의 짐을 지게 되었는데, 하나는 남의 압박이고 또 하나는 제 노릇을 못하는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였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역사에서는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원인이 되고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고 진단합니다.”
기독교인에서 무교회주의자, 그리고 퀘이커교도로 종교적 변신을 거듭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역사철학의 테두리 역시 넓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는 이제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이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그 형식은 그 민족을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되는 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죠.” 역사가로서 함석헌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 자유·평화·진실의 존재
그 참이 함석헌에게는 ‘씨알’을 뜻한다. “물이 바다로 가듯 역사는 씨알로 간다. 씨알로 감은 결국 하느님으로 가는 길이다. 씨알을 받듦이 하늘나라 섬김이다. 씨알을 노래함은 곧 하느님을 노래함이다”는 말에서 역사와 종교 앞에 선 생명을 지닌 자유, 평화, 진실의 존재가 인간의 본연임을 알 수 있다는 것. 현묘하고 도저한 함석헌의 사상은 시간의 질곡을 견뎌 후세와의 만남을 열망하고 있다고 노 교수는 전한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