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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노력의 결실 《한말외국인기록》, 번역자 신복룡 교수를 만나다
30년 노력의 결실 《한말외국인기록》, 번역자 신복룡 교수를 만나다
  • 이진영
  • 승인 2020.04.2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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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읽을 만한 책을 쓰는데 30년은 짧은 세월"

최근 11권의 전면 개정판으로 20년 만에 재출간된 《한말외국인기록》(집문당, 2019)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1973년부터 27년에 걸쳐 번역한 전집이다. 신 교수는 ‘지내놓고 보니 후대에 읽을 만한 책을 쓰는 데는 30년도 짧더라’고 말했다. 100여 년 전 저작을 번역하면서 그가 느낀 것들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며 든 생각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말외국인기록》 전 23권을 번역하면서 가장 애정이 갔던 책은 무엇인가? 

“사람 인연도 첫 인연이 소중한데, 나로서는 제일 처음 번역한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대한제국멸망사』(1906)이다. 1960년대 말 그 책을 처음 보면서 ‘한국사에 대한 외국인 기록을 왜 우리는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이 책은 미국사회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데도 대단히 소중한 텍스트가 됐다. 필자인 헐버트 목사의 묘가 양화진에 있는데, 이따금 자손들이 한국에 오면 만나곤 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책마다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슈텐 베리만(1895∼1975)의 『야생동물지』(1936)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베리만은 사냥꾼이자 박물학자, 박제 전문가였는데, 그에 앞서 조선을 방문했을 때 경주 서봉총을 발굴한 인연이 있었던 스웨덴 국왕이 베리만에게 자연사박물관을 세울만한 자료를 수집해오라고 지시해서 엄청난 양의 조선 동물을 사냥해갔다. 그 기록을 보면서 한국의 동식물학자들이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가져와서 번역했다. 이 책이 한국의 자연사연구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번역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아끼는 책 중 하나가 에른스트 오페르트(1832~1903)의 『금단의 나라 조선』(1880)이다. 오페르트는 한국에 오기 전 이미 상당한 재산을 가진 거상(巨商)이었고 공부도 제대로 한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을 말할 때 ‘조선은 다민족사회’라는 주장을 최초로 하는 등 문화인류학적으로 뛰어난 통찰과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도굴범이라는 오명 때문에 안타깝게도 공이 모두 묻혀버렸다. 

오페르트는 독일계 유대인인데, 그의 책은 한국에 관한 자료를 한자로 써서 일본말로 읽고 독일어로 탈고하여 다시 영어로 번역한 것이니 그새 지명·인명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겠나. 그런 부분 하나하나 확인해서 번역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독일문화원에서 협조해주어 많이 찾았지만 여전히 오류가 있을 것이다. 후배들이 나를 딛고 일어서서 바로잡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2019년 전면개정판으로 재출간된 《한말외국인기록》전집의 제1권 『대한제국멸망사』(헐버트, 1906)의 표지.
2019년 전면개정판으로 재출간된 《한말외국인기록》전집의 제1권 『대한제국멸망사』(헐버트, 1906)의 표지. ©집문당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인상 깊은 구절이 많다. 헐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에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관찰도 있는데 ‘한국남자는 집(house)은 있어도 가정(home)은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도 한 남자로서 참 미안했다. 한국남자는 세상을 떠날 때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같은 상황에서 미국남자는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문화의 차이 같다. 아내와 가정,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생각한다. 

또한 헐버트만 아니라 게일(1863~1937), 길모어(1843~1891) 등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인데 ‘남존여비는 부분적이었지 조선인 전체가 그렇지는 않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이 존대 받진 않았지만 세계적 보편사로 볼 때 그렇게 열악한 지위는 아니었다는 관찰이었다. 그때까지도 여성에겐 이름이 없었지만 일찍이 한국의 사대부만 한 여권존중을 본적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다만 중하위 신분계층의 여성과 다르게 사대부 여성들은 화병(hwabyung)을 앓더라는 관찰도 있다. 참아야 할 일이 많고 거느려야 할 가솔에 대한 책임이 컸기 때문이다.” 

남장을 한 채 당나귀를 타고 조선을 여행한 비숍 여사. 1894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남장을 한 채 당나귀를 타고 조선을 여행한 비숍 여사. 1894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개화기 조선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비숍(1831~1904)이라는 여성은 1894년 동학난 때 와보고 ‘조선은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시골에서는 너무나 비참하게 사는데 그 시대 부자들은 파나마 시가를 태우고 프랑스 코냑을 마시고 수단 카펫을 깔고 남아프리카산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모습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비숍이 시베리아 한인촌을 가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곳의 조선인들은 깨끗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본 절망스런 조선인의 모습은 가혹한 수탈에 시달린 체념이었다고 비숍은 기록하고 있다.”
 

-개화기 외국인 23인의 글을 번역하며 그 시대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여행 소감’이 궁금하다. 

“지금 후배들에게 ‘밖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세대는 대전만 가도 전날 밤에 잠을 못 잤다.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다른 나라에 가볼 필요가 있다. 《한말외국인기록》은 150년 전에 당나귀 타고 다닌 여행기이다. 150년 전 사람들도 했는데 지금은 뭘 못하겠나. 앞이 안 보이고 답답할수록 조금 비켜서서 세상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백여 년 전과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른가? 

“저자들이 살던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가 150년 차이인데, 인류 역사에서 150년은 긴 시간이 아니더라. 본질적으로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문화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동양과 서양, 150년의 시차가 중요하지 않더라.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입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입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오르는 신복룡 교수

 

-이 전집을 번역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보람과 유익은 무엇이었나? 

“한 책을 27년 붙잡고 있었다면 내가 독한 놈인지 미련한 놈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후대에 읽을 만한 책을 쓰는데 30년이 짧더라. 정말 멋있는 책을 썼더라도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게, 내 경험에 따르면 3판 나오기까지 필자는 자신의 책을 장담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개정판이 4판인데 첫 권이 나온 해로부터 50년 되는 셈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공부란 죽을 때 끝나는 것(學者沒身已矣)’이란 말이 나온다. 나도 그렇게 인생을 마치고 싶다. 공부하다가 죽고 싶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공부 아니면 살 길이 없었고, 되돌아보면 공부가 제일 쉬웠다.” 


인터뷰에 이어 신 교수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찾았다. 노교수는 천천히 걸었다. 말없이 한 걸음씩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긴 시간 옛 문헌과 씨름했을 그의 노력을 생각하게 했다. 헐버트, 베델, 아펜젤러… 그가 번역한 책의 저자들 가운데 일부가 잠들어 있는 그곳에 봄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등 굽은 노파 한 분이 묘지 위에 난 잡초를 말없이 뽑고 있었다.  

양화진에 있는 헐버트 박사의 묘. 비석 옆에 있는 작은 돌에 새겨진 문구는 신복룡 교수가 작성했다.
양화진에 있는 헐버트 박사의 묘. 비석 옆에 있는 작은 돌에 새겨진 문구는 신복룡 교수가 작성했다.
1999년 50주기에 세워진 기념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1999년 50주기에 세워진 기념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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