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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역사이고 증언이 문학이었다
기억이 역사이고 증언이 문학이었다
  • 이혜인
  • 승인 2020.04.2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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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증언 | 저자 통일인문학연구단 | 씽크스마트 | 304쪽

흔히 ‘역사’라고 불리는 것은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역사는 특정 시점의 특정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일관되게 말할 때, 그 사건은 ‘공식적인 역사’로 인정받아 기존의 시간대에 편입된다. 그러나 분명히 발생하여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어떠한 사정 때문에 말해지지 못하여 ‘공식적인 역사’에 포함되지 못한 사건들이 존재한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었기에 말하지 못했고, 믿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말하지 못했고, ‘빨갱이’로 몰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못했던 것은 오롯이 증언이 되어 문학 속에 안착했다.
왜냐하면 문학은 픽션이니까. 말하지 못했던 것을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할 수 있으니까. 역사의 빈틈을 헤집을 수 있으니까.

이 책 『기억과 증언』은 역사적 사건인 ‘분단’을 다룬 『태백산맥』, 「순이 삼촌」 등 총 16편의 소설을 통해 공적 역사가 미처 다 기록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여다본다. 다만 전쟁의 기록에만 집중하지 않고, 분단 그 자체보단 분단을 통해 실제 우리네 삶에 일어났던 ‘분단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며 그 고통과 상처에 주목했다. 

<출판사 책 리뷰>

아픔의 역사, 분단을 소설로 다시 바라보다

1945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우리 민족은 ‘분단’이라는 크나큰 상처를 안은 채 근 75년 남짓한 세월을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처는 흐려지고 옅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차 늙어가면서 목소리를 잃게 되어 세상에서 잊히는 탓이다.
하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여러 소설 속에 남아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을, 그때 일어났던 사건을, 그때 입었던 폭력의 형태와 그 후유증을. 소설은 작가가 상상하여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감춰졌던 진실과 메시지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떤 소설은 실제 역사적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 이런 지점에서 출발한 『기억과 증언』은 우리 시대의 분단의 기억과 아픔을 당대 소설문학을 통해 들여다본다.

『기억과 증언』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현기영의 「순이 삼촌」, 임철우의 「곡두 운동회」처럼 흔히 알려진 작품들은 물론이고 전명선의 「방아쇠」나 양영제의 『여수역』, 이호철의 「탈향」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통해 분단의 논리에 따라 삭제되고 왜곡되었던 분단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여순 반란’이라 명명되는 여순 사건과 단순 공산주의 폭동으로 잘못 알려졌던 대구 10월 사건, 그리고 중요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던 흥남철수사건이나 수복지구 원주민의 삶, 이산가족의 삶 등을 재조명하고 있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이 문장은 여러 매체에서 즐겨 인용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분단이 아닌, 그 분단을 직접 겪고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기억과 증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단의 역사가 교과서 및 역사서에 박제되어 남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기억하고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저자 소개

이병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윤여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남경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김종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김종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박재인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한상효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곽아람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박성은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
전영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책 속으로>


p.12 《기억과 증언》은 곧 역사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분단의 역사가 누적해온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에서 한 단계 더 파고들어 사람을 주체로 한 ‘경험한 이야기’ 형태로 분단의 역사를 이해하고, 분단과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이 책이 분단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시민들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평화의 조건을 사유하게 하는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p.42 『태백산맥』이 지닌 문학적, 역사적 의의는 무엇보다도 분단 체제의 전사를 이루는 해방 정국의 숱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한반도 분단의 뿌리와 분단 극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말해 『태백산맥』의 핵심 주제는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 건설과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통일국가 건설이다.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과 고착화된 경제적 불균형 해소는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도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이다. 『태백산맥』은 이러한 과제들이 왜 실현되지 않았는가를 이 시기의 사회적 상황을 중심으로 탐색하면서 분단의 원인과 동시에 그 극복 가능성을 모색한다.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려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101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잊고 화해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최대한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조금씩 몸에 닿다 보면 결국 온몸을 적셔가듯이,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상처를 안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좌시했음을 사죄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제주 4· 3과 그 이후를 그저 지켜보던 우리 모두도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에서 더는 순이 삼촌과 같은 상처받은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순이 삼촌의 역사를, 제주 4· 3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한순간의 추모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억하고 그 아픔을 함께해서 제주 4· 3이라는 역사가 박제되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순이 삼촌을 기억해야 한다.

p.192 미시사(microhistory)로 기록된 마을전쟁은 한국사회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쟁 전부터 한국사회는 신분제, 지주제, 씨족 간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등 갈등 요소가 많았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한국전쟁기에 격렬한 충돌과 반복적인 학살로 나타났다. 전쟁 이전부터 지속되던 사람들간의 갈등과 원한이 ‘전쟁’과 ‘이데올로기 갈등’을 통해 폭력적으로 배출된 것이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애초의 목적을 상실한 채 한반도 전역을 물들이던 이데올로기 갈등은 그렇게 허망한 것이었다.

p.219 적군묘지에 관한 논란은 소설이 다룬 중국전 참전에대한 역사를 상기하게 한다. ‘기록된 역사’의 관점에서만 보면 적군묘지에 묻힌 시신들은 그저 한국전쟁의 전투 중에서 격퇴된 ‘사망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망자 하나라는 숫자로만 기록된 역사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그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던 무시무시한 적군을 물리치고 철퇴시킨 ‘자랑스러운’ 우리(我)의 목소리만이 기록될 뿐이다. 결코 말해질 수 없다는 ‘뿌넝숴(不能設)’의 진실은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얘기들을 내게 말해”줄 때, 말이나 글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라 몸으로 겪은 삶을 삶아본 사람들만이 말해줄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적군묘지에 묻힌 시신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신이나마 이곳에 남겨 그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이었음을 기억하고 추모할 뿐이다.


<목 차>

머리말 · 상처 난, 침묵된, 지워진 분단의 역사를 문학과 사람으로 채워 읽다_김종군

1 불완전한 해방이 빚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존재, 빨치산_이병수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분단 체제의 전사를 이루는 해방 정국의 숱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한반도 분단의 뿌리와 분단 극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데 문학적, 역사적 의의가 있다.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었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려 한 작품이다.

2 메마른 하늘에 울려 퍼진 민중의 소리_윤여환
그동안 단순 공산주의 폭동으로 왜곡되고 삭제되었던 대구 10월 사건. 그러나 전명선의 「방아쇠」는 해방 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서 9월 총파업과 대구 10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방아쇠」 다시 읽기는 곧 분단의 논리에 따라 삭제되고 왜곡되었던 해방정국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시도다.

3 순이 삼촌의 일생으로 비극의 역사를 말하다_남경우
현기영은 「순이 삼촌」에 등장하는 순이 삼촌의 삶과 죽음을 통해 제주 4·3이 남긴 상처 그 자체를 드러냈다.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의 상처를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같은 상처를 또 다시 겪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이 삼촌」으로 제주 4·3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4 국가에 의해 설계된 악, 국가폭력의 시작_김종군
지금까지도 ‘여순 반란’이라 명명되는 여순 사건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행한 최초의 양민학살이었고 국가폭력이었다. 드물게 여순 사건을 문학작품으로 남긴 양영제 작가의 『여수역』은 생존자들의 구술과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폭력의 잔혹성을 고발한다.

5 골짜기의 비탄을 기억하라!_김종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루는 4편의 문학작품, 최용탁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과 조갑상의 『밤의 눈』과 「물구나무서는 아이」, 그리고 이창동의 「소지」를 통해 당시 보도연맹이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자를 철저하게 감시·통제·배제하는 반민주적 기구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6 한국전쟁의 숨은 이야기, 마을전쟁_박재인
임철우의 「곡두 운동회」는 마을전쟁의 과정과 그 속에 놓인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던 갈등과 원한이 폭력적으로 배출된 결과물인 마을전쟁은 한국전쟁 시기 곳곳에서 벌어졌다. 「곡두 운동회」 속 마을전쟁을 통해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는 분단과 전쟁, 원한과 복수의 역사를 돌아본다.

7 전쟁의 또 다른 주체, 중국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_한상효
전쟁 미체험 세대인 김연수가 발표한 「뿌넝숴不能說」는 ‘타자되어 말하기’를 통해 기존 세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뿌넝숴不能說」는 한국전쟁 시기 중국군 참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전쟁에 참여했던 개인들의 이야기, 그 고통과 비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8 회귀본능과 심리적 애착의 공간, 고향_곽아람
이호철의 「탈향」은 실향민으로 살던 저자가 갖고 있던 고향에 대한 귀향의식이 표출된 결과물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고향은 삶의 터전이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흥남철수작전 이후 발생한 수많은 실향민들은 살기 위해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을 억제해야만 했다.

9 수복지구 사람들의 끝나지 않은 전쟁_박성은
이경자의 『순이』와 『세 번째 집』, 이순원의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박완서의 「빨갱이 바이러스」는 38선을 통해 생겨난 수복지구 원주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잠재적 간첩’ 취급을 받으며 상호 감시체제 아래에서 고통 받던 이들은 전쟁이 끝난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살아가고 있다.

10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진 혈육의 끈_전영선
1992년 8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이산가족들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일부 지역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이문열의 「아우와의 만남」은 타국의 접경지에서 이루어진 이산가족의 은밀한 접촉과 현대사의 영원한 상처로 남을 분단의 아픔을 그렸다.

참고자료
<기억과 증언>을 만든 사람들

 


      <저자> 통일인문학연구단

통일인문학연구단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기관이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은 통일이 남북의 정치·경제적 체제 통합을 넘어 ‘사람의 통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미래 통일 한반도가 연대와 상생의 공동체가 되려면, 지금부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소통’과 분단이 낳은 상처를 끌어안고 원한과 증오의 감정을 내려놓는 ‘치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통일이 미래 어느 한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끝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통일 이후 남과 북의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연대하며 ‘통합’하는 세계 건설의 여정이라 본다.

이에 통일인문학연구단은 지난 10여 년간 통일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을 통해 확산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일반대학원 협동과정으로 통일인문학 석박사과정을 운용하면서 실력 있는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교육대학원에 ‘통일교육전공’을 개설하고 소통·치유·통합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통일 교육을 담당할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학부연계전공에 ‘통일인문교육전공’을 신설하고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 갈 대학 지성인을 육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 및 지역 도서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각종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작품들>
조정래의『태백산맥』 현기영의『순이 삼촌』 임철우의『곡두 운동회』전명선의『방아쇠』양영제의『여수역』 이호철의『탈향』 최용탁의『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조갑상의『밤의 눈』과『물구나무서는 아이』 이창동의『소지』 임철우의『곡두 운동회』김연수의『뿌넝숴不能說』 이호철의『탈향』 이경자의『순이』와『세 번째 집』 이순원의『잃어버린 시간』 박완서의『빨갱이 바이러스』 이문열의『아우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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