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2:40 (토)
새로운 학문 : 인문사회의학
새로운 학문 : 인문사회의학
  • 양은배 연세대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질병에 관한 심리, 사회, 문화적 통합 분석

양은배 / 연세대 의학교육학과

최근 의학교육 학계에는 의학이 인간의 질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접근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주로 생물학적 측면에만 편중돼 온 점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강하다. 의학이 분명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자연과학이라는 틀에 갇혀서 인간을 하나의 물체로 대해 온 경향에 대한 반성이다.

이런 자기반성적 성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분야가 ‘인문사회의학’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의에 따르면 인문사회의학은 ‘인간의 질병 및 건강과 관련된 제반 측면을 생물학적 관점 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 등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플렉스너 이후 지금까지 의학과 의료는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으로부터 질병의 개념을 분리하고 의학의 과학화를 강조해 왔다. 반면, 인문사회의학은 인간과 인간이 가진 질병을 구분하지 않으며 인간의 질병에 대한 심리·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통합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즉, 인간의 질병은 인간과 분리굉 병원체로 분석되어질 대상이 아니라 그곳에는 가치관, 질병관, 고통의 의미, 치료의 개념, 종교적 행위, 도움 요청 행동, 가족 책임, 치료비 지불 등 환자가 처해 있는 인문사회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문사회의학은 이러한 공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의료 서비스는 사회학적 측면을 동반하는 상호작용

인문사회의학이 단순히 질병의 치료와 관련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삶과 관련된다면, 인문사회의학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인문사회의학은 의료 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환자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 자신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해석한다.

의료 서비스는 과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측면을 동반하는 상호작용의 하나이기 때문에 의학의 변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인문사회의학은 의료가 가진 독특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한 윤리적 고민과 지적인 이해, 그리고 행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의학 기술이 첨단화 되면서 의학과 의료에는 철학, 윤리 등의 문제가 과거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되게 되었다. 생명 복제의 문제가 그러하고 유전자 치료 등에 대한 윤리적 갈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의사들이 취해야 하는 윤리적 판단과 행동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사회의학의 탐구대상은 자연과학 중심의 의학과는 다른 영역을 점유하며, 탐구의 대상이 의학적 상황이라는 점에서 인문사회과학과는 구별된다. 즉, 인문사회의학은 기존의 의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관점을 지향한 전통적인 의학의 협소한 연구대상과 방법론을 부정하고, 의학과 인문사회과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학문분야로 급속히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 사회까지 치료하는 의학 강조

인문사회의학은 우리 사회가 어떤 의사를 요구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의사들이 갖추어야 하는 지식, 기술 및 태도 뿐만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서 일어나는 심리적,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 까지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의사란 과연 어떤 직업인가, 우리사회는 어떤 의사를 요구하는가, 그리고 그 의사들을 키워내는 의학교육은 과연 어떤 것이 돼야 하는가, 왜 국민들은 의사들을 불신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은 의사가 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는가, 의과대학에서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 의사들은 진정 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해 주고, ‘우리 의사선생님’이라는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95% 이상의 생물학적인 지식으로 구성된 의학교육과정 속에서 인간성과 참된 가치관을 갖춘 진정한 의사를 키워내는 의학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단지 인간의 육체만을 치료하고 돈을 받는 의료기술자가 아닌, 인간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사회까지를 치료하는 ‘진정한 의학과 의료’를 강조한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현재의 의학과 의료 시스템은 최선인 측면이 많이 있다. 다만 문제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계속 가지고 간다면 의료와 의학은 미래에 결국 어떤 절대적 한계 앞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문사회의학은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인문사회의학의 강조는 문학, 교육학, 법학, 경영학 등을 전공한 우수한 인력들이 의과대학으로 유입되어 의료와 법, 의료 경영, 의학과 윤리, 의학과 문학 등의 새로운 간학문적 교과목들이 개설되기 시작했으며, 한국의학교육학회를 중심으로 인문사회의학에 대한 연구와 학술대회 또한 활발히 개최되고 있다.

필자는 연세대에서 ‘의과대학 평가인정 기준의 타당도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분야는 의과대학 평가와 인문사회의학이다. ‘인문사회의학 활성화 방안 연구’,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에 관한 고찰’, ‘의학교육입문검사 개발’ 등 의학교육에 관한 30여편의 논문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