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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밝힌 인간의 도덕적 기원...'신다윈주의' 도래 예감
진화론이 밝힌 인간의 도덕적 기원...'신다윈주의' 도래 예감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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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생물학으로 인간 설명한 두권의 책

생물학으로 인간을 설명하는 두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은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을 요령껏 소개해 1995년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얼굴'(이상 사이언스북스 刊)은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얼굴의 모든 것을 6백쪽으로 담은 보기 드문 책이다.

라이트의 책은 다윈과 윌슨의 뒤를 이어서 유전적 결정론을 설득력 있게 개진했다. 일단 독자들을 휘어잡는 멋드러진 서술은 데즈몬드 모리스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얼굴'은 여러모로 막스 피카르의 '사람의 얼굴'(책세상 刊)과 겹쳐읽어볼 만하다.

 피카르가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철학성과 심미성을 극도로 종단했다면, 이 책은 신화, 영화, 그림, 문학, 유머 등에 등장하는 얼굴과 관련된 정보를 펼치고 있다. 서문에서 "진화심리학을 선전하기 위해 썼다"고 고백한 라이트와는 달리 '얼굴'의 저자 대니얼 맥닐은 그런 학문적 본능을 노출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저자들은 모두 학자는 아니다. 라이트는 겸임교수이긴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본업이다. 그 점에서 두 책은 과학대중서로 분류될 수 있지만, 차이는 분명히 느껴진다. '도덕적 동물'이 지난 9년간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힌 '전공서'로 대접받은 반면, '얼굴'은 문화적 콘텍스트를 헤집는 저자의 노고는 인정되지만 재미있는 정보 이상의 메시지는 없다.

좀더 큰 맥락으로 돌아가자. 최근 생물학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물리학의 권좌를 뺏았다는 등의 말들이 들려오는데, 이 두 책에서는 '다윈의 귀환'이라는 징후를 느낄 수 있다. 1990년대에는 프로이트가 귀환하더니 2000년대에 한 세대 앞선 다윈이 귀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건 역사의 반복일까, 아니면 현대의 몰락일까.

여러모로 '도덕적 동물'의 사회생물학은 여전히 자연선택설을 좀더 면밀한 실험으로 계승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1975년 '사회생물학'을 펴냈다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로부터 폭격을 당한 에드워드 윌슨 이후 터져나온 매우 설득력 있는 외침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연히 냉혹한 파시스트 류에 이용당한 생물학자들을 옹호하는 게 큰 목적 중의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면서 성, 가족, 집단, 사회, 정치와의 놀라운 연관성을 이끌어 낸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허풍이 아니다. 이 책은 성실하고 위트있게 자신을 변호한다. 먼저 이론의 현실적용을 본격적이고 거침없이 하고 있다. 사실 윌슨의 책은 개미들에 논의를 국한시키고 있으며, 다윈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또한 인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회피하고 있었다. "인간사회에서도 추론해볼 수 있다"라고 제안하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확실한 차별화가 일어난다. 이 책은 무덤에 누운 '찰스 다윈'을 제물로 삼았다. 다윈의 결혼과 성생활, 생각과 행동 등 전기적 기록을 진화론에 따라 분석하면서 진화론의 본질과 인간 본성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다윈과 사회 전반을 오가며 저자는 혼인과 가족제도, 친지와 친족, 사회적 위계와 갈등을 관찰한다. 일부일처제는 남자에게 유리한가, 여자에게 유리한가. 부모는 왜 자식들 중 누군가를 편애하는가, 자기기만의 생물학적 뿌리는 무엇인가. 저자가 밝혀낸 사회구조와 인간심성의 생물학적 기원은 우리의 통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가령 "과학적 혁명을 주도·지지한 이는 장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남성의 유전자 번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여성의 성 심리, 행동이 자연 선택을 통해 미리 프로그램 돼 있다"는 주장은 특히 여성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것 같다. 즉, "인간 도덕가치의 근원에는 유전자의 번성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지향하는 이기심이 전제돼 있다"는 게 결론이다.

생물학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인 "인과관계의 명료성"은 여전히 다원적 관점과 열린 결말과 부딪힌다. 물론 그것도 보기 나름이다. 예전의 사시스트처럼 그것이 절대진리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하다. 다윈의 '성 선택이론', 윌리엄 해밀턴의 '친족선택이론', 로버트 트리버스의 '상호수혜주의 이론' 등 사회생물학의 핵심을 설명하는 저자의 기술은 부드러우며, '두꺼운 묘사'라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얼굴'은 한번에 쭉 읽어나가기엔 부담되는 책이다. 입, 코, 눈, 볼, 이마, 머리, 뇌, 턱, 귀, 눈꺼풀 등등의 생물학적 정보를 풀어주고, 그 다음엔 문화분석적 설명으로 나가거나, 인류학적 예시를 선택하거나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엔 흥미롭지만 갈수록 대동소이한데, 얼굴의 어떤 부위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할 때 그 부분을 펴보는 일상적 도서로 곁에 두면 좋을 듯하다.

이들 두권의 책은 여러 면에서 사이언스 라이팅의 모범을 보여준다. 특히 과학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여타 인문학을 활용하면서 생물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어 '다윈의 귀환'이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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