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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일본과 임진왜란』(최관 지음, 고려대출판부 刊, 395쪽)
주간리뷰 : 『일본과 임진왜란』(최관 지음, 고려대출판부 刊, 395쪽)
  • 정형 단국대
  • 승인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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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에 새겨진 '壬亂'

이 책은 임진왜란이 낳은 한일 양국 문학의 특징과 그 구체적인 전개과정을 비교문학적, 비교문화적 시점에서 조감하고 있다. 이 중 임진왜란을 작품의 소재와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일본근세소설의 문학화 과정의 고찰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1592년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을 일반적으로 분로쿠·게이초의 역이라고 부른다. 役이란 문자 그대로 주어진 임무 혹은 전쟁이라는 의미인바 명칭만으로 보면 분로쿠·게이쵸의 역은 단순히 국가의 명에 따른 전쟁을 뜻한다. '왜의 난'이라고 표현하는 우리와 비교할 때 침략전쟁에 대한 이 명칭의 가치중립적인 느낌을 부인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바로 여기에 이 전쟁을 바라보는 양국의 인식의 편차가 상징적으로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일본에서도 이 전쟁의 실상과 침략성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간 이 전쟁에 관한 일본의 시각은 근대 일본의 발자취만큼 파행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의 일본측 기록은 전쟁기록을 담당하는 전문 종군요원에 의해 대량으로 남겨졌다. 이들은 이 전쟁의 일본측 명령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恩賞을 받기 위해 오로지 일본군의 전투행위만을 기록했으므로, 기록의 대부분에는 조선민중에 대한 일본군의 침략적 잔학행위가 은폐됐고 일본군의 모든 전쟁행위는 무용담으로 미화됐다.

따라서 이 기록들은 임진왜란의 침략전쟁으로서의 실체적 진실을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인 즉 지배계급인 무사와 일반민중들의 이 전쟁에 대한 인식의 기저로서 자리잡게 된다.

이후 근세중기의 일본 국학자들은 古事記의 왜곡된 전설기록인 三韓征伐 기술을 사실로 인정하고 분로쿠·게이쵸의 역을 같은 맥락에서 합리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근대 메이지 초의 征韓論의 대두와 조선의 식민지화의 배경에 이 전쟁기록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군기물의 임진왜란 서술은 실제와 비교적 일치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자의적 서술경향이 농후한 '다이코키'와는 크게 다르다"-본문 59쪽에서

이러한 흐름은 일본의 근세문학에서도 '朝鮮軍記物'이라는 장르의 형태로 문학화됐고 일본에서의 임진왜란 관련 문학의 줄기를 이뤘다. 바로 이 문학화의 과정에 관한 고찰을 통해 저자는 일본문학에 새겨진 임진왜란의 의미를 비교문화론적 시각에서 밝혀내고 있다.

이런 관점은 제1부 3장의 '일본에서의 문학화'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문학화의 배경을 언급하면서 太閤記物, 朝鮮征伐記物 등을 대상으로 조선군기물의 완성과정과 근대일본과의 관련양상, 임진왜란의 문예화와 관련문학의 확대에 관해 고찰하고 있으며 저자의 이러한 작업은 '木曾 관련 문예물에 관한 고찰', '임진왜란과 일본 근대문학에 관한 고찰', '일본에서의 이순신의 문학화에 관한 고찰' 등으로 이어지며 명확한 모습을 드러낸다.

분로쿠·게이쵸의 역에 관해 거의 無知에 가까운 현대일본인과 임진왜란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한 한국인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자 한다.

정형 / 단국대·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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