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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신여성』(문옥표 외 지음, 청년사 刊, 326쪽)
주간리뷰 : 『신여성』(문옥표 외 지음, 청년사 刊, 326쪽)
  • 허동현 경희대
  • 승인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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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프리즘에 비친 두 모습

허동현 / 경희대·한국사

신여성은 누구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일제의 식민주의, 유교적인 가부장제의 제약 속에서도 민족차별과 성차별에 저항하며 여성운동과 사회·경제활동을 펼친 이"(이배용), "해방된 여성 문화를 창조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평등하게 사회적 의무까지 지겠다던 이"(박용옥), "민족에 눈뜨고 젠더를 의식하고 계급의 해방을 외친 이"(송연옥),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서 해방되고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 이"(이노우에 가즈에), "중등 이상의 신교육을 받고 개성에 눈뜬 근대적 인간"(이상경), 그리고 "신교육을 받고 저술 활동과 개인적인 삶을 통한 실천에서 근대적인 가족 및 남녀 관계를 추구하고자 한 이"(문옥표)라고.

사학·인류학·문학, 원로와 신진, 그리고 한국과 일본학계, 서로 다른 프리즘에 비친 신여성의 모습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이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신여성의 모습은 크게 둘이다. 욕망의 자유와 몸의 해방을 꿈꾼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견해(이노우에 가즈에·문옥표·이상경)와 젠더의 해방을 꿈꾸는 여성이기에 앞서 민족과 계급의 해방을 함께 고뇌하는 인간으로 보는 견해(이배용·박용옥·송연옥)가 그 대척점을 이룬다.

전자가 입센의 '인형의 집'(1879)의 주인공 노라와 히라츠카 라이초우(1886∼1971)와 나혜석(1896∼1948)을 연장선상에 놓고, 보편으로서 여성의 해방을 논하는 현대 페미니즘의 눈을 갖고, 개인으로 우뚝 선 이들만을 신여성으로 그리고 있다면, 후자는 서구와 일본과 달리 계급과 민족의 질곡에 눈감을 수 없던 식민지 근대를 살아간 조선 여성들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민족과 계급이라는 거대담론에 여성을 종속시킨다.

"대공황을 전후한 대중운동의 열기 속에서 여학교 시절을 보낸 신여성은 사회에 나와 실업, 전향 등의 어려움에 부딪혔고 1930년대엔 전쟁에 동원됐다."-본문 244쪽에서

이노우에는 신여성의 범주를 젠더를 넘어 계급과 민족문제로까지 확대하는 시각에 우려를 표하며, 주체적 여성으로서 각성한 나혜석을 신여성의 표상으로 꼽는다. 반면 송연옥은 개인으로서 자기 실현을 중시한 나혜석보다 젠더를 계급 문제의 하위에 위치시킨 사회주의자 허정숙에게 높은 평점을 준다. 이노우에에게 허정숙은 여성의 해방을 꿈꾼 신여성이기보다 사회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매몰된 사회주의자일 뿐이지만, 송연옥에게 나혜석은 "근대가정의 환성에 빠져" 계급 해방을 생각하지 못한 몽상가로 비칠 뿐이다.

근대가 독립된 개인의 시대라면, 신여성은 개인으로 거듭난 여성들일 터. 여성 해방을 꿈꾼 나혜석 같은 근대적 인간이 자라나고 있었기에 식민지 조선에 수탈만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로라와 히라츠카로 상징되는 서구와 일본의 신여성들이 집단으로 여성의 해방을 외칠 수 있었던 데 반해 나혜석과 같은 조선의 신여성은 왜 혼자 맨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을까. 일그러진 식민지 근대에 보이는 발전은 결국 "잘못된 발전"이자 "과잉발전"이었음은 나혜석의 비극적 삶이 웅변한다고 보면 지나친 생각일까.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라는 나혜석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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