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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찾아서
이순신을 찾아서
  • 조재근
  • 승인 2020.04.23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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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호출된 국난 극복의 영웅 이순신
이순신을 찾아서/최원식
이순신을 찾아서/최원식

최원식 | 돌베개 | 376쪽

이 책의 저자 최원식은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 이후 이순신을 다룬 책들을 검토하여 이순신 이야기의 변모를 통시적으로 살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1928~1939), 환산 이윤재의 『성웅 이순신』(1931),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1931~1932), 구보 박태원의 『임진조국전쟁』(1960),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 김지하의 「구리 이순신」(1971), 김탁환의 『불멸』(1998), 김훈의 『칼의 노래』(2001)를 출간 시기를 기준으로 다루었고, 이와 함께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 1932~2007)의 『소설 임진왜란』(1992)도 다루었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20세기 초에 국권 회복의 메타포로 선택된 이순신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해방 이후에는 국민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받들어졌다. 그런데 이 저항의 이미지가 박정희(朴正熙) 시대에 노산 이은상(1903∼1982)의 부용(附庸)으로 개발독재의 체제 서사로 전환되었다.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도 이때다. 이순신을 빙자하여 임시정부에서 이탈한 자신을 변호할 속셈을 감춘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 그 기원일 것인데, 마침 박정희가 그 애독자라고 전해진다. 춘원에서 박정희의 뜻을 받든 노산의 이순신을 거쳐 김훈에까지 드리운 이 경향은 이순신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박해받는 수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기존 이순신 연구자들은 이러한 경향의 원조로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든다. 하지만 저자는 단재가 서술한 이순신은 춘원의 이순신, 그리고 박정희 이후 선양되기 시작한 성웅 이순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단재는 스스로를 이순신에 비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해가 단재 연구의 부실함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단재 신채호는 임시정부 시절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하려는 이승만과 대립했으며,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로 급진화하면서 이승만과의 사이도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6·25전쟁 이후 더욱 경직된 반공 친미 노선 속에서 단재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이런 단재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친일파 박정희에 의해서다. 5·16쿠데타 세력은 남북 체재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4월혁명 이후 남한 민중 속에서 고조된 민족주의적 동력을 일정하게 수용하기 위해 단재를 복권시켰다. 신채호를 민족주의자로 고정시키면서 그의 다양한 사상적 변모 과정과 사적들이 연구되지 못했고, 국한문체로 집필한 그의 작품 『수군제일위인 이순신』도 여태껏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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