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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프로불편러’가 목표라고?
【딸깍발이】 ‘프로불편러’가 목표라고?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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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가 되는 게 제 목표에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예민해졌다고 하는데, 저는 이런 말을 들어도 그 전으로 돌아가긴 싫어요.” 지난주 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프로불편러’는 프로(professional)+불편+러(er)을 합친 신조어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문제를 삼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일컫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로 학생이 한 말이었다. 여대에서 글쓰기와 토론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글과 말을 보며 변화의 흐름을 느낀다. 더 많은 학생들이 여성문제에 민감해지고 있다.

4.15총선 다음 날, ZOOM을 활용한 화상수업에서 학생들과 선거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18세로 선거연령이 낮춰진 덕분에 생애 첫 투표를 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주목한 것은 ‘여성의 당’이었다. “2제 여성이 여성을 9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29번 ‘여성의 당’이 20여만표를 넘게 얻어, 총35개 비례대표 정당중 10위를 차지했다. 학생들은 “여성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 당에 투표했다고 한다.

정당의 이름에서부터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준 ‘여성의 당’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공식출범하였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제도권 정치 진입을 목표로 창당되었다. 공약도 디지털 성범죄 근절, 스토킹 범죄 처벌, 성별 임금격차 타파, 여성 1인 가구 주거 안정 등에 초점을 두었다. 여성혐오 사회에 분노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요구를 반영하였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비키 랜달(Vicky Randall)은 『여성과 정치』에서 여성들이 정치에 선천적으로 무관심하지도 무능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지면 여성은 정치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여성들이 직접 정당을 만드는 정치 행동에 나선 이유는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사고를 갖고 무엇이 불편한지 문제를 제기하며 남성지배적인 정치의 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자원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권력 행위다. 4.15총선 결과, 여성은 지역구와 비례를 합쳐 총 57명이 당선되었다. 역대 최다라고 하지만 여성의원 비율은 19.0%에 불과하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에서 늘 상위권인 핀란드 정치에서 여성은 40% 이상을 차지한다.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인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이끌고 있는 내각도 현재 절반 이상이 여성 장관들이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위다.

2020년 온라인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은 페미니즘은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불편러’가 되려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무엇이 불편한지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 위함이란다.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여성들도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김누리는 “향후 한국 여성운동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하였다. 독일에서는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반면, 한국교육에서는 도외시되었음을 지적한다. 이제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존중과 평등의 마인드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자기만의 방』에서 이같이 예견했다. 2020년 정치의 장에 여성들의 방을 만들고 4.15 총선에 뛰어든 신생 ‘여성의 당’을 지지한 새내기 유권자는 말한다. “더 많은 여성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페미니즘으로 장착된 여성들이 정치의 주체로 한 걸음을 크게 내딛었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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