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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 심해보다 깊고 어두운 상처들
[김희철의 문화칼럼] 심해보다 깊고 어두운 상처들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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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NFLIX 연극 '7번 국도' 온라인 공연 리뷰
또 다른 피해자 생기지 않게 부당한 일 참으면 안돼
연극 '7번 국도'(온라인 상영본에서 캡쳐)
연극 '7번 국도'(온라인 상영본에서 캡쳐)

공장이 멈추고 유가는 하락한다. 온라인 수업, 온라인 회의, 온라인 관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인류의 생활방식을 순식간에 뒤바꾸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밥을 먹을 수 없고 가상 현실에서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몸뚱이는 분명 오프라인에서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염병 치료제가 출시된 단계도 아니고 여전히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생각하면 마음대로 이곳저곳 여행하거나 전시를 보러 다니기엔 이른 감이 있다.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면서 공연이나 전시를 촬영한 것을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작년에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 <7번 국도>(작 배해률, 연출 구자혜)가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 공연 형태로 상영되고 있어 집에서 콕 박혀 관람했다.

7번 국도는 동쪽 해안가를 타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일반 도로를 지칭한다. 이 연극은 이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의 대화로 시작한다. 택시 기사로 나오는 중년 여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산업 재해로 죽은 젊은이의 엄마이고 택시의 승객으로 탄 군인은 부대에서 발생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은 가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군인은 그 공장에서 죽은 여성에 대해 “만약 공부라도 열심히 했더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공장에서 발생한 억울한 죽음들의 원인은 다 그 당사자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인가? 

택시 기사를 하면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은 시간이 날 때마다 수원에 간다. 딸이 죽은 공장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딸은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만 또 다른 죽음들을 막기 위해서다. 공장을 상대로 함께 싸워왔던 유가족들은 서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회사가 내미는 합의금에 굴복하여 더 이상 시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유족도 생겨난다.

부대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군인은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자신의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들에게 “우리 정도면 행복한 거다. 견뎌내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택시 기사는 “그렇게 참기만 하면, 그렇게 혼자만 생각하고 넘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라고 군인에게 강하게 충고한다. 딸을 먼저 떠나보낸 택시 기사 엄마는 후회하는 게 많다. 배낭여행 가고 싶어 하던 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던 게 한이 되었다.

필자가 2004년에 발표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은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3성 장군으로 퇴역한 김척 장군이었다. 국방부는 수차례에 걸쳐 재조사를 했지만 예외의 예외를 모은 ‘자살’이라고 발표했고 유족 측은 수십 가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타살을 주장했다. 이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조사했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라는 의미의 ‘불능’ 결론을 내렸다. 사건 발생 19년 만인 2017년에야 김훈 중위의 죽음이 순직으로 인정되어 그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지만 유가족이 20년 넘게 겪은 고통과 슬픔은 그 어떤 심해보다 깊고 어둡다.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 포스터와 故 김훈 중위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 포스터와 故 김훈 중위

군대에서 경찰에서 각종 기관에서 또는 국가의 직무유기나 방관으로 발생했던 죽음들이 너무나 많다. 그 상처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어루만지고 기억해도 모자랄 판에 천륜에 어긋나는 망발을 내뱉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의 짓거리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경우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을 한다. 4월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달이다.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은 이제 역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길 바란다. 이 연극의 공연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끝났지만 훗날 꼭 무대에서 다시 관객들과 만나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길 바란다.

김희철 문화칼럼니스트/서일대학교 강사
김희철 문화칼럼니스트/서일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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