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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 (55)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 (55)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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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스테이

답답할 땐 상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월든' 숲에 박혀 살며 비도덕 행위를 하는 정부에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텨 감방 신세를 진 소로우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철창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철창 밖 모든 사람들이 갇힌 거라고. 고모 덕에 하룻밤 만에 나오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념을 빗대 자기의 정신세계를 우긴다. 아무리 그것이 ‘아Q’ 같더라도 말이다. 

소로우가 루소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루소도 그랬다. 감옥에 갇힌 사람만이 자유롭다고. 왜냐하면 그는 혼자인데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은 고독할지라도 독립적이고, 비사회적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까닭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루소에 따르면 사회 상태로 나가자마자 서로 등을 처먹을 수밖에 없고, 우열을 나누고, 명성 때문에 다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홀로 지내는 스님이야말로 자유롭다는 결론이 나온다. 안다, 중 되는 가장 큰 까닭이 자유롭고자 하는 것임을. 머리만 밀면 그때부터 자유니 한 번쯤 밀어볼 만도 하다. 암자에서 홀로 지내는 스님이야말로 자유욕(自由慾)의 화신(化身)이다. 욕심 가운데 가장 부려볼 만한 욕심이 바로 자유에 대한 욕심인 걸 어찌하랴. 그래서 스님들은 다시 한 번 부정하지 않는가. 욕심을 버리고자 욕심 부리는 것도 버리라고, 자유롭고자 욕심 부리는 것도 욕심이라고. 여인을 냉큼 업어 내를 건네준 어른 스님에게 내를 건너온 지 한참 되어 ‘그래도 되냐’고 젊은 스님이 따지자 어른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아직도 마음이 여인네에 있구나!’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실례가 되는 비상한 염병 시국 속에서 어쩌냐, 상상이라도 해보시라는 것이다. 소로우가 되던, 루소가 되던, 스님이 되던 상상의 날개 속에서 이를테면 자기의 집을 짓고 자기의 텃밭에서 자기의 쇼를 펼쳐보시라는 말씀이다. 

그 가운데 내가 상상하는 공간이 바로 감은사지다. 나는 누구보다도 감은사탑을 좋아한다. 그 탑만 보면 웅혼(雄渾)한 기개를 느낀다. 조잔(凋殘)하지가 않다. 대한민국에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큰 쌍탑이 어디 또 있는가? 13.4미터 높이지만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그다지 크게 못 느낀다. 먼저 비교할 건축물이 없어서 그렇다. 오직 탑만 있으니 그 높이를 견줄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사진을 보면 그 탑의 규모를 안다. 또 균형이 잘 맞으면 크고 작음에서 멀어진다. 작아도 균형이 맞으면 커 보이고, 커도 균형이 맞으면 작아 보인다는 말이다. 엉뚱한 비유지만 여자 탤런트는 얼굴이 주먹만 한데도 화면에서는 알맞아 보이고, 남자 탤런트는 키가 큰데도 화면에서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더 가슴이 뛴다.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를 바다에 묻으라고 한 문무대왕의 호기부터, 아버지의 뜻을 간직하려 감은사를 짓고 금당 밑으로 들락날락하시라고 한 신문왕 유업의 계승까지 다 멋있다. 신문왕은 바다에 섬이 떠 내려와 거기 대나무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었다니 이야기도 재밌다. 피리를 불면 바다가 조용해지거나, 피리를 불면 아버지가 바다를 조용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씀이니 어쨌든 좋다. 

경주를 오기 위해 외국 사신들은 감은사까지 대종(大鐘)이 잠겼다는 대종천을 통해 배를 몰고 들어왔을 것이다. 주지 스님이 어서 오시라며 하룻밤 쉬고 내일 경주로 들어가라고 말할 것이다. 배가 닿는 절, 장계(張戒)의 시에 나오는 한산사(寒山寺)가 그랬다. 사람들은 이렇게 신라의 호텔 감은 스테이에서 감은(感恩)의 종소리를 듣는다. 

나만의 상상 속 감은사가 있다. 강물이 출렁이고 배들이 정박해있으며, 사람들이 탑을 바라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다음날 토함산을 넘어갈 구상을 하는, 그리고 베네치아 아니 낙산사 홍연암처럼 금당 밑으로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는 절이다. 오늘 혼자 대종천을 다 팠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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